본국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IMF체제 때 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는 하소연이다. 두 사람만 모여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한다고 한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5%가 현 경제상황을 ‘위기’라고 진단한 것을 보면 상황이 심각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대책이 나와도 몇 번은 나왔을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책발표는커녕 대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조차 이젠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경제가 왜 이 지경인가에 대한 원인 분석은 기대조차 어렵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이상한 상황. 그것은 노무현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경제위기 주장’을 사실상 ‘반개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데 따른 ‘몸사림’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나서서 현 상황이 경제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못박았으니 공무원들이 움직일 여지가 없다. 더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위기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까지 나가니 지금 상황에서 누가 반개혁 세력으로 몰릴 것을 각오하고 바른 말을 하겠는가. 최근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재벌총수들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청와대를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 진짜 이유를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점에 경제위기론이 왜 확대되는지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에 반대해 뒷다리를 걸자는 게 결코 아니다. 경제가 왜 이렇게 기력을 찾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따져보고 대책도 마련해보라는 얘기다.
대체 정치란 뭔가. 쉽게 말해서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것 아닌가. 이념이나 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제다. 이념이나 개혁보다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바로 경제다. 그리고 지금은 국제적으로 ‘이념이나 개혁의 시대’를 지나 ‘경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좌파민족주의 정권의 집권 이후 ‘경제의 시대’에서 ‘이념과 개혁의 시대’로 되돌아가 살고 있다. 좌파적 성향의 정책들이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를 개혁의 대상으로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기업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다름 아니다. 지금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경제에도 개혁은 필요하다. 성장이 중요하지만 분배도 배려돼야한다. 기업주가 소중하듯 근로자도 존중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권이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 방법과 정도는 좀 더 세련돼져야 한다. 개혁에 대한 지나친 의욕과 조급함은 근본을 망치게 할 수 있다.
개혁을 재단하던 칼로 경제를 요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결코 돈이 돌지 않는다. 개혁의 칼로 부정부패를 처단할 수는 있지만 안방에서 잠자고 있는 돈을 깨워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 돈이 어떻게될지 모르는데 투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투자는 억지로 강요한다고 활성화되지 않는다.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 면담 후 부랴부랴 70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지만 것이 진짜 집행되리라고 믿을 사람은 없다. 가만히 있으면 개혁에 저항하는 것처럼 비칠까싶어 하는 시늉을 내는 것뿐이다.
누가 뭐래도 돈은 이익이 있는 곳으로 몰린다. 이익이 보장되는 환경만 조성되면 돈은 저절로 흐른다.
투자환경 조성은 집권세력이 해야 한다. 정치 경제 불안요인을 없애고 예측 가능한 경제상황을 만들면 경제는 그냥 돌아간다. 그러면서 하는 개혁이 진짜 개혁이다.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혁도 결국 정치세력들의 집권을 위한 수단적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개혁자체를 위해 개혁을 지지하는 국민은 없다. 개혁을 통해 긍정적인 혜택을 보자는 기대로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다.
가진 사람들은 개혁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서민들은 다르다. 개혁이 실패하면 그 피해는 대부분 서민들에게 돌아간다. 경제가 안 좋아 먹고살기 힘들게 되면 개혁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 개혁을 통해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해서 밀어줬는데 대체 누구를 위한 개혁이냐는 불만이 커지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라는 충격적인 제도를 어렵사리 도입하고도 YS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재벌과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다. 좋든 싫든 그것이 현실이고 돈의 위력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것이 싫다고 재벌과 미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것은 경제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벌과 미국이 없어도 한국경제는 걱정 없다? 진정 사실이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경제를 살려야 개혁도 성공할 수 있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의식과 지식을 가져야 한다. ‘경제를 살리면서 하는 개혁’. 지금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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