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는 어떤 곳인가. 때때로 이렇게 자문하지만 한 마디로 이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한 20년 살았으면 LA를 알만도 한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LA에서는 우선 옥석 구별이 쉽지 않다. 비유가 좀 어떨까 싶지만 LA 한인사회라는 곳은 대통령의 아들부터 천하 사기꾼까지 한 통에 넣고 세게 몇 번 흔든 후 좍 풀어놓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괄적으로‘대통령 아들은 옥’, ‘사기꾼은 돌’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되긴 했으나 LA에 오면 모든 것은 일단 뒤죽박죽이다. LA식 신분 재편성이 이뤄지는 것이다.
서울서 위에 있던 사람은 밑으로 깔리고, 아래가 위로 올라가는가 하면, 한 말씀 하실만한 분들은 입을 닫고 사는 반면 어딜 봐도 큰 소리칠 건덕지가 없는 사람들이 큰소리 뻥뻥 치며 뭐라도 된 듯 사는 곳이 LA이기도 하다.
같은 교회 안에서도 누가 나쁜 나라고, 좋은 나라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목사님이 중매했다고 믿고 결혼했다가 낭패 보는 경우도 여럿 봤다. 서울사람들 같은 LA 왕초보들이 LA 사람을 제대로 감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 초기에 현직 대통령 아들이 LA근교 스왑밋에서 여자옷 가게를 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대통령이 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들이 아직 스왑밋에서 200스케어피트 짜리 여자옷 가게를 하고 있다는 것은 뉴스거리였다.
기자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는 자리를 피하고 없었다. 그렇다고 만만히 물러날 수 있나. 가게 구석구석을 살펴봤더니 시에서 나온 영업허가증이 한 켠에 붙어 있었다. 거기 적힌 집 주소대로 대통령의 아들집을 찾았다. 그 집은 뜻밖에도 버몬트와 1가의 구 한국일보 사옥 뒤쪽에 있었다.
타운 사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은 좋은 지역이라고 할 수 없다. 잘해야 3베드룸 처럼 보이는 집은 허름했고, 그나마 셋집인 듯 했다. 누가 살든 우선 안전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신문에 사진이 나가면 내일부터 교회나 마켓은 어떻게 가겠느냐며 한사코 문을 열지 않고 버티는 대통령의 아들과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하다 물러나긴 했지만 그때 LA는 이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아들도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사는 곳이 LA’라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대통령의 아들들이 잇달아 감옥에 잡혀가기 전이어서 대통령의 아들이라면‘귀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여기에 크게 거부감을 갖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던 때였다.
10년 전 평양에서 본 LA사람들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LA사람들은 어딘가 미국식 매너가 몸에 밴 중서부쪽 단체 관광객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북측 안내원들도 손님대접을 할만큼은 한 것 같은데 사소한 일로 속이 틀린 일부 LA 사람들은 거기가 어디라고 관광거부니 뭐니 하며 핏대를 올렸다. 자존심 센 북측 지도원들도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 LA식 매너가 당당하긴 했으나 LA 사람들은 평양서도 못 말리는 사람들이었다.
걸핏하면 서울의 누구를 들먹이며 목에 힘을 주는 LA 사람들은 누가 봐도 우습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어떤 때는 정말 그 큰소리 대로 일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옆에서 보기에는 분명 무리한 일인데 그게 이뤄질 때는 LA는 알 수 없는 곳이 된다.
최근 다시 LA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일이 터졌다. 수 천만 달러 대의 투자사기 사건 두 건이 곧 그것이다. 도대체 LA 부자들은 어떤 사람들 이길래 그렇게 까맣게 투자 사기꾼에게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LA 1.5세가 뭐 길래 연고도 없는 서울서 수 백억을 끌어 모을 수 있었나 하는 것도 아주 궁금한 사항이다.
LA 뿐 아니라 어디서나 무 자르듯 확연하게 사람을 옥석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옥석 구별은 하지 못하더라도 옥으로 믿었던 돌에게 당하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과욕을 버리는 것이다. 듣기에 너무 좋은 것은 처음부터 믿지 말고,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만 벌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적어도 옥인 연 하는 LA 잡탕 돌들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상호<부국장 대우·사회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