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내 모든 보도 매체의 촉각은 온통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 서거에 매달려 있었다. TV채널이나 신문지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각인된 웃음 가득한 얼굴을 잊을세라 도배하고 있었다.
그 낙관적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10년 전 무서운 치매에 걸려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냥 떠나버린 주인공 같지 않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희망과 꿈이 있다’고 기분 좋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암살자의 총을 맞고도 주변을 와르르 웃게 했던 유머가 톡 터져 나올 것 같고 알츠하이머 발병을 ‘황혼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고 담대히 인정한 용기를 지금도 보여줄 것 같다.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남은 이들에게 되도록 좋은 기억을 남긴다지만 레이건 애도열기는 유별나게 높은 것 같다. 정치는 물론 경천동지할 만한 세상사에도 관심 가질 틈 없이 사는 민초들조차 그의 영원한 안식 길에 서둘러 나섰다. 어렸을 때나 또는 미국 전체가 어려웠을 때 레이건의 낙관적 웃음과 유머로 인해 삶의 감동이나 지표, 희망을 건져냈던 기억들을 간직한 채 그를 추모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건의 사진이나 영상에서 그는 언제나 싱글거린다. 웃는 근육만 써서인지 웃지 않을 때도 온화한 인상이다. 혹자는 언제나 심각한 인상의 지미 카터를 제치고 미국인들이 레이건에게 표를 몰아준 이유는 그의 웃음에서 당시 어려웠던 미국의 희망을 보고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급 영화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미국 역사상 최고령인 69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한 그의 천진한 듯한 웃음은 신선하고 이채로웠을 것이다. 70대에 들어선 노인(?)의 웃음을 보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대학동창으로 구성된 합창단에 최근 몇 개월 활동한 적이 있다. 매주 1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서 50대 중반이 가장 젊고 70대와 83세까지의 선후배들만이 모였다.
중간에 합류한 첫 느낌은 ‘경직된 무거움 그 자체’였다. 웃을 일이 뭐 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허긴 그 나이가 되면 가질 것 다 가져보고 알 것 거의 다 알고 산전수전도 다 겪었는데 새로울 것, 재미있을 것이 뭐 있겠는가 라고 이해되기도 했다.
문제는 그런 뚱한 표정, 웃음기 없는 얼굴들이 주변을 어둡게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외모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이 사그라지고 처지는데 게다가 밝은 미소조차 없다면 어찌 보이겠는가.
그런 가운데 70대 후반 몇명과 최고령의 83세 선배는 언제나 긍정적인 미소와 솔선 수범하는 자세로 합창단의 버팀목이 된 것이 인상 깊었다. 항상 가장 밝고 예쁜 옷으로 치장하고 가장 먼저 출석하여 맨 앞자리를 채우고 매번 연습 때마다 녹음했다. 손수 음식을 만들어 후배들을 대접하던 손길도 부지런했고 무엇보다 긍정적이며 감사하는 웃음으로 분위기를 상승시켰다.
당연한 결과로 그들은 전혀 실제 나이로 안보였다. 그들은 공연 후 마련된 평가회를 통해 “내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는 자랑(?)도 서슴지 않아 또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살면서도 라인댄스 교습에 앞장서고 아직도 뭐든지 배우려 하는 긍정적 선배들은 언제 마주쳐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곱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모습을 가르쳐 주는 분들이다.
반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한인사회의 노인자살 이슈가 우울하다. 올해 들어 벌써 20건이 보고되어 지난해 케이스를 훨씬 초과했다 한다. 전문가들은 60대 이상 노년층의 자살 가능성이 젊은이보다 높고 외로움, 질병, 자식 및 경제적 문제 등이 충동을 부추긴다고 진단하고 있다.
자식이나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들의 노력이다. 어느 누구나 늙어간다. 그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긍정적 사고와 열정으로 맞서야 한다.
어느 한의사의 ‘나이 많은 분은 질병을 친구처럼 대해주며 잘 사귀어야 합니다’라는 조언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부정적이고 웃음기 없는 노인에게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음은 인지상정이다. 늙어갈수록 더 웃고 더 대접하고 더 베풀어야 한다는 금언을 깊게 새기면서 레이건의 말대로 “황혼으로의 새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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