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이 제거됐지만 지구촌 곳곳에는 철혈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쫓겨난 독재자들도 반성은커녕 저 잘났다고 떠든다. 독재자 없는 세상은 불가능한가. CNN 기자였던 리카르도 오리지오가 희대의 독재자 7명과의 대화를 토대로 펴낸 ‘악마와의 대화’(Talk of the Devil: Encounters with Seven Dictators, 2004)에서 왜 독재가 사라지지 않는가를 음미할 수 있다.
Talk of the Devil
리카르도 오리지오
쫓겨난 폭군 7명의 변명
“나는 조국을 사랑했다” 학정 합리화
잊혀진 독재 파헤쳐 생생한 독재 경종
저자는 인육을 먹어 비난을 받고 있던 두 명의 아프리카 지도자에 관한 신문기사를 모으다가 세계에서 악명 높았던 독재자들의 ‘오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3명(아민, 보카사, 멩기스트), 유럽에서 3명(야루젤스키, 호자, 밀로세비치), 서반구 1명(듀발리에) 등 권자에서 쫓겨났으나 과거를 참회하지 않는 독재자 7명을 만나 심경을 들어보았다.
이디 아민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덕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아민은 집권기 부패에 대하여 “국가를 이끄는 것은 큰 사업이므로 지도자가 상급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또 아민은 히틀러를 대단한 인물로 평가하고, 인도인 8만 명을 추방한 데 대해 “신이 나에게 명하셨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고 할 정도였다.
중앙아프리카의 장 베델 보카사는 정적을 살해해 그 인육을 먹은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극악했다. 그는 자신을 ‘황제’로 칭했고 “나는 옥고를 치른 넬슨 만델라처럼 신의 아프리카에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학살에 대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을 보라. 세상이 떠드는 것은 내가 아프리카인이라서 그런 것이다”라는 인종차별론을 거론했다.
알바니아의 한 감방에 갇힌 미망인 넥스미제 호자는 남편 엔버 호자가 스탈린 식 철혈정치로 국민을 짓누른 데 대해 “나는 조국의 번영을 바랐을 뿐”이며 “민주주의는 저주이며 외국 이익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티에서 쫓겨나 파리에 새 둥지를 튼 장 끌로드 듀발리에게 주술은 하나의 신앙이었다. “주술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아이티를 지킨 민족투쟁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것이다. 부정축재에 대해 그는 “서구사회는 돈을 쏟아 부어 단기간에 민주주의를 이식시키려 했지만 이는 잘못”이라고 둘러댔다.
자국민 50만 명을 학살한 에디오피아의 멩기스트 헤일-마리암은 “소위 학살은 혁명과 국민에게 유익한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학살의 불가피성을 떠나 학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세르비아의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아내인 미라 마코비치, 폴란드 국가수반이었던 보이체흐 야루젤스키 등은 이런 저런 명분과 이유를 들면서 역사가 자신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미라는 회교도가 압도적인 코소보를 공격한 것에 대해 “왜 사람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코소보의 무슬림들을 무장시키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고 반문했다.
저자는 7명의 독재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이념을 이용한 권력을 쟁취한 점, 비밀경찰력을 동원한 개인숭배로 권력을 강화한 점, 친인척을 동원해 권력을 움켜쥔 점, 국가의 부를 교묘히 빼돌린 점 등 독재자들이 밟은 일련의 과정을 그렸다.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죄가 없다” “정적들이 모함했다” “내 치하에서 나라가 더욱 살기 좋았다”고 했다. 사실 객관적인 안정과 발전상태만으로 따진다면 독재자들이 한때 권력을 휘둘렀던 나라들이 지금 더 좋아졌다고 확언할 수 없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재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네 가지 공통점을 추출했다. 독재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모국에 거짓말을 했다. 둘째 이들은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 셋째, 이들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넷째, 이들은 광신자나 미치광이이다. 다섯째, 이들은 권력을 잃고 불명예스런 생활을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민, 보카사, 멩기스트 같은 독재자는 인간에 대한 털끝만큼의 연민도 없으며 인간의 고통에 전적으로 눈을 감는다. 국민은 자신들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이 책은 사람이 얼마나 지독해 질 수 있으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럴 경우 국민들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지 시사하고 있다. 정치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물론 일반독자들도 읽을만하다.
독재자들의 비슷한 답변을 구체적으로 천착하지 못한 점이라든가, 기록할만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별로 캐내지 못한 점, 또 야루젤스키 폴란드 공산당 서기장을 같은 범주에 포함시킨 것은 무리지만 잊혀져 가는 독재자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는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18년 동안 외신기자로 활동했다. 밀란, 애틀랜타, 브뤼셀 등지에서 CNN방송 통신원으로 일했다. 발칸전쟁을 취재하기도 했으며 80여 개 나라를 돌며 현장취재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지금 케냐에 살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은 애당초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것인데 추후 영어로 번역돼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책은 독재의 말로와 독재자의 뻔뻔함을 동시에 드러낸 흥미로운 책이다. 여기에서는 7명의 독재자를 추출했지만 실제 독재자는 아시아, 아랍, 중남미 등에도 적지 않다. 보다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후속 연구를 기대해 본다. 지도자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어느 시대보다 부각되는 요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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