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의회 도서관에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바꿔 놓은 책’에 관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는 물론 성경이었다. 두 번째로 뽑힌 책은 무엇일까. 그리스 신화? 셰익스피어? 정답은 아인 랜드 작 ‘하늘 떠받들기를 거부한 신 아틀라스’(Atlas Shrugged)다.
책제목이나 저자 모두 한인들에게는 생소하다. 성경 다음으로 많은 미국인들의 인생을 바꿔놓은 책을 쓴 아인 랜드는 누구인가. 1905년 러시아 산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의 장녀로 태어난 랜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경험하며 공산주의의 실상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1926년 친척 방문을 이유로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신청, 기적적으로 출국 비자를 받는다.
미국에 건너 온 후 잠시 친척집에 머물다 할리웃으로 옮긴 랜드는 단역 배우부터 대본 작가 등 잡일을 하며 공산주의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썼으나 러시아 혁명에 동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던 3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먹히지 않는다.
그녀에게 첫 성공을 가져다 준 것은 창조적이며 영웅적인 건축가 이야기를 그린 ‘파운틴헤드’다. 1943년 출간된 이 책은 랜드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줬으며 그 후 사회적 착취에 항의하는 진정한 생산자들의 파업을 다룬 ‘아틀라스’는 랜드의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랜드의 책은 지금까지 총 2,000만 부가 판매됐다.
윤리적으로는 이기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철학적으로는 객관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랜드는 늘 격렬한 논쟁의 초점이 되어 왔다. “행복 추구를 생의 도덕적 목적으로, 생산적 업적을 최고의 행위로, 이성을 유일한 절대로 여기는 영웅적 인간상이 내 철학의 핵심”이라는 그녀의 철학은 타협을 용납지 않는다.
랜드에 따르면 각자가 자신의 능력과 노동으로 정당한 대가를 얻는 자본주의를 제외한 모든 체제는 인간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제도다. 이런 제도와 타협하는 것은 스스로 악에 물 드는 것이다. 인간은 도덕적 동물이다. 따라서 아무리 효율적인 제도라도 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부도덕하다면 마땅히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종래의 자본주의 지지자들은 자본주의의 효율성만 강조함으로써 사회주의와의 논쟁에서 늘 져 왔다는 것이 랜드의 생각이다.
랜드는 1982년 숨을 거둘 때까지 책뿐만이 아니라 숱한 강연과 철학 서클을 만들어 자신의 주장을 전파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랜드 서클 ‘컬렉티브’의 말단 멤버로 활약하다 지금은 미 경제를 주무르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있다. 부시 대통령에 의해 5번째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으로 지명된 앨런 그린스팬이다.
뉴욕 하층 유대계 출신인 그린스팬은 엘리트 코스를 거친 정통 관료가 아니다. 같은 유대계인 키신저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중고등학교를 나온 후 음악에 꿈을 품고 줄리아드 음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며 색소폰을 불었다. 후에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꿨지만 돈이 없어 박사 학위 논문을 내지 못한 채 그만 뒀다(학교측은 그가 출세하자 나중에 논문 없이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그가 철학과 문학, 경제와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눈을 뜨고 사회를 보는 눈을 넓혀 간 것은 20대 젊은 시절 랜드를 만나서부터다. 랜드에 대한 찬반 논란이 치열하던 시절에도 그는 랜드에 대한 자신의 정신적 빚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린스팬은 “셰비 자동차 한 대에 볼트가 몇 개 들어가고 그 중 3개가 빠지면 미국 경제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알고 있는 인물”이란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20년 가까이 미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단순히 숫자 놀음에 뛰어나서가 아니라 미국 체제의 에센스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랜드를 모르고 그린스팬과 미국을 깊게 읽기는 어렵다. 다행히 추리소설처럼 흥미로운 랜드의 대표작 ‘아틀라스’가 미국에서 발간된 지 46년 만에 작년 한국말로 번역됐다. 이번 메모리얼 데이를 ‘아틀라스’와 함께 보내는 것도 연휴를 유익하게 보내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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