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본보편집위원>
한국과 미국간에 50년을 이어온 동맹관계가 끝내 청산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노무현정권 출범이후 그토록 우려한 상황이건만 끝내 오고야 만 것이다.
양국이 공식적으로는 점잖게 표현은 하고 있으나 내막적으로는 이미 서로 갈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이미 주한 미군의 일부를 이라크에 차출하는 형식으로 주한미군의 철수을 공식화했고, 해외주둔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 미군의 감축을 추진하고 있음을 감추려하지 않고있다.
한국은 이에 대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떠나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떠나간다니 안말리겠다는 자세다.
‘한미동맹’은 이제 아주 무기력한 말이 되고 말았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한미동맹의 기능도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한미관계를 어떤 형태로 재정립할 것인가하는 과제만 남아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변화에 따른 결과적 손해득실과 무관하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엔 양국의 여건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노무현정권출범이후 한국사회는 결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17대 총선 결과는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여당 국회의원들중 ‘한국이 가장 중시해야할 나라’로 미국보다 중국을 꼽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한미관계 향방을 제시하고도 남는다.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다수의 사람들이 ‘주한미군철수’와 ‘한미동맹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미 새롭지 않다. 그들이 이제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세력(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주한미군 철수반대’ ‘한미동맹 강화’는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미국인들은 한국의 이같은 변화를 바라보며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동안의 지원에 대한 감사는 커녕 의도적으로 반미감정을 조장해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그에 대한 대응이 철군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와줘도 좋은소리 못들을 바에야 굳이 막대한 돈을 써가며 억지로 미국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는 인식인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군은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직접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다. 다시말해 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곧바로 참전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그렇다면 당장 미군의 철수에 따른 군사적 공백을 한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북한의 자포자기식 군사행동이든, 미국의 악의 축 제거를 위한 선제공격이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경제적, 군사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능력이 있다고 해도 안보는 그것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주변국들과의 효과적인 외교가 뒷받침되어야 안보는 확실해진다. 미국을 멀리한다면 누구와 손잡고 한국의 안보를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비는 있는지. 또 그것을 해 나갈 능력은 갖추고 있는지 불안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한국만 독야청청한다고 안보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청산은 한국경제에도 악역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상황은 안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앓아 누워야 현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의 여당 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해 할말을 다하는 한국’을 만들어야한다”고 기세를 올린다. 말은 맞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감은 실질적인 능력이 뒤받침될 때만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책임한 만용에 불과한 것이고, 그 결과는 국가적으로 엄청한 손실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한국이 그런 자신감을 보일 실력을 갖추고 있는가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한미관계의 변화에 대처할 실효성 있는 대비책을 가지고 있는가는 당장 시급한 과제다.
이런 말을 하면 “미군이 철수한다고 당장 한국이 망하느냐”며 “호들갑 떨지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국방전문가는 “북한 때문에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 현실을 왜곡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위기를 과장한다”며 “미군이 없더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확율은 천만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위기를 과장한다는 돌팔매을 맞더라도 그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호전적이고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아니 변하고 싶어도 스스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한미동맹관계의 변화가 한국 국민의 선택이라면 이제와서 그 선택의 잘잘못을 다시 따지고 싶지는 않다. 이제부터라도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다만 한미동맹관계의 청산은 한국과 미국 어느쪽에도 등 돌리고 살 수 없는 재미 한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한미동맹의 파탄을 바라보는 재미 한인들의 속내는 그래서 본국사람들보다 더욱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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