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다룬 책이 꾸준히 나온다. 요즘의 경향이 그런데 새롭다면 새롭다. 주로 신앙문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한 때의 유행일지도 모른다.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어라. 그러면 대박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감도 없지 않아서다.
멜 깁슨의 ‘그리스도의 수난’이 흥행의 대기록을 세웠다. ‘목적이 이끄는 삶’ ‘더 다빈치 코드’-. 서점을 휩쓰는 베스트 셀러들도 그렇다. 세일의 포인트는 하나같이 예수다.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이다. 일찍이, 그러니까 한 세기도 훨씬 전 토크빌이 말한 그대로다.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의 영혼에 그토록 심대한 영향을 주는 나라는 아메리카밖에 없다.
대통령의 신앙에 초점을 맞춘 책들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최고 권력자의 내면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 중 하나가 폴 켄고어가 지은 책으로, 레이건 대통령의 신앙문제와 관련해 많은 숨겨진 일화들을 담고 있다.
레이건은 대통령 시절 교회를 가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그가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은 대통령으로 묘사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대통령이 성경을 들고 교회를 방문한다. 더 없는 사진 거리다. 이미지 세일에도 아주 좋은 기회다. 그러나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경호문제 때문이다. 오히려 예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신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신념 때문에 레이건은 이벤트성의 교회 방문을 극력 피했다는 것이다.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는 모습을 가장 많이 연출한 대통령은 오히려 그의 후임자다. 빌 클린턴 말이다.
소련 방문 때에는 그러나 180도의 태도를 보였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God)을 언급했다. 이유는 이렇다고 했다. 공산체제 하의 소련 시민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레이건이 무엇보다 관심을 보인 게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었다. 투옥돼 있는 반체제 인사들의 명단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 측 인사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근황을 물었다. 그 결과 알게 모르게 많은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이 석방됐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꾸준한 관심,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그에 따른 겸손한 믿음이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결론이다.
겸손한 신앙이란 점에서 조지 W 부시는 레이건을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체제의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부시가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이다. 국민을 굶어 죽이는 김정일 체제에 대해서는 그리고 혐오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부른 것이나 부시가 김정일 체제를 ‘악의 축’으로 부른 것은 일맥 상통한다. 고귀한 생명을 압살하는 체제는 그들의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악’(Evil)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다. 대통령, 다시 말해 최고 통치자가 깊은 신앙심을 지닐 대 이게 국가와 국민에 반드시 플러스가 될까 하는 의구심에서다.
말하자면 이렇다는 거다. 말 끝 마다 하나님을 언급하는 대통령은 이슬람 과격주의 탈레반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유럽의 시각이 특히 이런 식이다.
대통령의 신앙을 다룬 책들은 그러나 감연히 외친다. 대통령이 깊은 신앙심으로 국난을 이겨나간다. 이것이 미국의 전통이다. 이 점에서 부시나, 레이건은 전통에 충실한 대통령이다. 초대 워싱턴이 그랬다. Q 애덤스, 링컨, 맥킨리, 윌슨, 트루먼….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 도다.
미국 대통령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오랜 칩거 끝에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려져서다. 그리고 동시에 북한문제 청문회에서 한 미국의 저명 인사가 한 말이 불현듯 생각나서다.
“언젠가 역사가들이 한반도의 현 위기를 돌아볼 때 뭔가 상당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민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이 두 명의 한국 대통령 정부가 동포인 북한 주민이 맞은 처절한 비극을 줄기차게 외면했다는 점에서다. 단순히 잘못된 상황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건 위헌(違憲)적 상황이다. 한국의 헌법은 북한 주민도 한국 시민이고 또 보호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트루먼이 그랬던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국민들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한 게. 돌아온 노 대통령은 무슨 말을 먼저 할까.
겸손히 기도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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