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동란으로 방송국에서 마련 해준 열차 화물칸에 실려 대구까지 피난을 갔었다. 그 후,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던 중, 우리 방송인들이 탄 버스가 대형 트럭과 충돌, 운전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앞 유리창을 뚫고 거리에 던져졌었다.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마침 그 병원 부속 간호학교 학생들이 그들 사이에 돌고 있던 문예지를 들고 몰려와 사인을 하란다. 보여 주던 책의 표지에는 나의 사진이 전면에 실려 있었다. 내가 담당했던 심야에 나가는 ‘문학의 밤‘은 많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나 또한 모파상이 쓴 ‘여자의 일생’은 언젠가 나도 우리 한민족의 여자의 일생을 쓰리라는 충동을 주었다. ‘샛별’ ‘장래가 기대된다’ 는 기사였다. 허나 학업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는 방송 일은 포기했어야만 했다. 그 후, 젊은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 중의 하나인 이른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며 나타나는 태양계 가족 중 계명성(啓明星)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준다, 밝혀준다는 뜻을 가진 금성은 나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으며 가슴 답답할 때면 나의 유일한 위로의 벗이 되어 주었다.
우주, 언제나 그 곳에 있건만 하루하루 생활에 쫓겨, 우주를 잊고 살아가는 사이에도 온갖 신비 가득 담고 우리 머리 위에 존재한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뒤에 신화와 전설만이 아닌, 우주 이야기들. 거기에는 별들의 탄생과 성장, 죽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수천 억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숨어있는 은하의 비밀이.
지구, 태양이라고 부르는 별의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 위에 살고 있는 모래알 만 한 나를 새벽에 샛별이 반겨줄 때면 감동과 희망을 안겨준다. 태양보다 백만배나 더 밝은 별들이 있는 우주의 태양은 1초에 250만km를 움직이며 은하계에 있는 궤도를 한 바퀴 도는데 2억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은하계의 길이는 10만광년에 이른다니 1광년은 약 10조km 정도라고 현대 과학은 밝히고 있다. 태양계 가족의 가장격인 하늘의 반을 독차지한 폭군 태양은 하늘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별들이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절대로 용납지 않는다. 먼 별나라의 별들까지도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질 때를 기다렸다가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구에 사는 생물은 모두 태양이 제공하는 에너지로 생명을 영위하고 있으니 태양은 태양계의 절대 권력자임에 틀림없다. 태양을 신으로 섬겨온 사람들의 잘못도 태양계 총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강한 인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태양과 달 다음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금성은 새벽의 샛별, 인간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는 별이다. 인간 일상생활에 태양은 낮의 하늘을 지배하는 낮의 제왕이라면 달은 그 반쪽인 밤을 지배하는 밤의 여왕이라,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천체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짜를 세고, 달을 헤아리는 달력에도 태양의 운동을 중심으로 만든 양력과, 달의 운동을 중심으로 만든 음력이 있다. 달은 가슴속에 슬픈 사연을 간직한 외로운 사람들의 벗이 되어왔고 눈물을 흘리게 하며 시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허나 이 시대의 달은 과학자들의 도마 위에 놓여있다. 그런고로 달은 인류와 가까운 천체가 되었다.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오르고 내리는 현상은 바로 달의 인력으로 발생한다. 달에는 우리의 시야를 방해할 공기가 없기 때문에, 달은 자세히 관측할 수 있다.
청년기에 있는 별들이 있는가 하면, 거성이나 초거성은 별의 진화단계에서 마지막 단계에 있는 별들로,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서서히 식어 가는 별들도 있다. 많은 별들이 홀로 있는 별들보다는 두개로 이루어진 이중성인 경우가 많다. 여름 밤 하늘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눈물 흘리는 직녀와 견우의 전설, 달도 구름도 없는 도시에서 좀 떨어진 요세미티 같은 곳, 강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산 속에서의 밤, 은하수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면 세상사 다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별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춘다.
우유가 흘러가는 강처럼 보이는 은하수 수백만 개로 이룬 별들도 망원경으로 보면 개개의 별로 보이니 마냥 신비하다. 만약에 은하를 한바퀴 여행한다고 하면 몇십 만년 걸릴 것이라고 한다. 깊어 가는 겨울밤 지평선 위로 얼굴 내미는 겨울 별자리들, 2월이 되면 이 별자리들은 초저녁에 중천을 지나고 있고 3, 4월이 오면 차츰 서쪽으로 기울어져 빛을 잃고 뒤쫓아 나타나는 사자자리에게 하늘을 내줄 채비를 한다. 5월이 되면 겨울철 별자리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다음 겨울의 새로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겨울철 별자리들이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여름밤의 별, 슬픈 전설을 간직한 직녀성, 공주답게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칠월 칠석의 약속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일까? 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은 얼마나 신비하고 광대하신가! 다시 한번 감탄한다.
우주의 신비와 마주 하다보면 하찮은 일로 다투고 미워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화를 내고, 나의 진실이 왜곡되었을 때 모든 것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하는 왜소한 나를 떨쳐 버릴 수 가 있다. 별을 세고 있으려면 나의 아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작은 나에게서 도망쳐, 넓은 가슴에 우주를 끌어안을 만큼, 내 마음은 한없이 커진다. 일상생활의 굴레 속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순간, 무한한 행복에 젖어든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우주는, 또 새벽에 빛나는 나의 샛별은 별들의 축제 속으로 나를 초대한다.
박복수
▲미주 기독교문인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미 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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