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 장래가 지극히 어둡다고 본다. 어깨를 으쓱대던 경제 기적은 한낱 과거의 기억 속에 묻혀간다. 남들은 똘똘 뭉쳐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가진 자와 안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 남과 북, 우파와 좌파로 갈려 승리의 쟁취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전의를 번득이는 나라, 바로 그 곳이 불행하게도 우리의 대한민국이다.
물론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의 우려에 핏대를 내는 면면은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북한 핵도 통일만 되면 우리 것 아닌가, 폐기하라 말라 왜 야단들인가 하는 민족 지상주의자들, 이제는 우리 세상이 됐노라고 기고만장인 좌파들, ‘양키 고홈’을 외치는 반미주의자들, 이만하면 파이가 제법 컸으니 나눠 먹자는 분배주의자들, 60대 이상 노인은 골방에서 자기들이 펼치는 화려한 무대나 구경하라는 권력 주류들이다.
기존 대한민국의 제방은 무너졌다. 감성에 젖어 흥분하고 때론 기뻐 펄쩍 뛰는, 한량없이 순진무후한 백성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저들의 도도한 진군에 기존 가치는 무너져 내렸다.
이른바 한국 정치의 신주류들은 성장 과정과 사상과 전력과 가족사에 남다른 뒷 이야기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집권세력은 물론, 노동판을 휘어잡고 있는 민노당 출신 중엔 시국사범이라고 오히려 얼굴을 번쩍 들고 다니는 전과자이거나, 전쟁 중에 북한으로 가 현재 고위직에 앉아있는 아버지 삼촌 친형 등 혈육을 숨기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결코 연좌제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왠지 찜찜함이 남는다.
그들은 으레 민족과 애국과 자주를 들먹이며 소리친다. 제 나라 제 민족 장래가 어둡다는 자는 필시 반민족주의자거나, 외세 영합주의자거나 개혁을 두려워하는 자들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이야말로 반민족, 반통일, 반시장경제, 반민주주의자들이라고 감히 말하려 한다. 우리 민족의 장래가 북한 김정일 정권에 아부하고, 핵무기나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북한 간첩 잡기를 중지하고,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이라크 파병을 뒤집으려 음모하고, 시장경제 대신 좌파적 통제정책을 시도하고, 포퓰리즘적 선동정치를 일삼고, 과거 헌정사를 부정하는 ‘가열 찬 투쟁’(북한식 표현)으로 담보될 수 있는가. 천만의 말이다. 그럴 경우 경제는 낙후하고 안보는 흔들리고 남북 합작의 괴이한 사이비 통일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를 장악한 열린 우리당의 진보좌파 의원들(당선자들)은 한국이 향후 중국을 우호국(파트너)으로 어깨동무하고 미국과의 끈은 단절하는 게 옳다고 선언했다. 당의 이념 정립을 놓고 벌린 토론회 분위기는 한마디로 반미 일색이었다고 한다.
30대가 주류를 이룬 집권 여당의 색깔과 진로가 이렇다면 우리 장래를 왜 어둡게 보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저들은 고비마다 우리를 지켜주고 힘을 키워 준 세계 최강국, 미국을 더 이상 파트너로 손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무서운 힘으로 질주 중인 중국을 안보 경제 파트너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건 정말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중국이 누구인가. 수 천년 동안 한민족을 위협해 온 위험한 이웃이었다. 조공과 복종만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해 주었을 뿐이다. 6.25동란 때 김일성을 원조한 것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개방경제로 연간 10%의 성장으로 달려나가는 무서운 경쟁국이다.
최근 긴축정책을 발표하자 한국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수출에 먹구름이 끼고 있음을 보면 알지 않는가.
중국은 조만간 아시아 패권을 거머쥘 것이다. 경제와 군사력 모두를 동원해서. 한국에서 미군이 빠지면 러시아인들 손놓고 있을까. 일본은 철저히 친미정책으로 미국 핵우산 아래서 안정과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 얼마나 약은 민족인가.
그렇다면 한국은? 미군을 쫓아낸 마당에 무슨 낯으로 워싱턴에 도움을 청할 것인가. 미국이 국가 이익 때문에 한국에 주둔한다는 말은 이제 낡은 논리다. 워싱턴은 한국에서 군대를 빼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힘이 있다.
문제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했을 때의 일이다. 맨 먼저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미국 시장도 한국 상품에 문을 닫을 것이다. 안보는 어찌 될까.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 대한 군사정보는 그 날로 마감이다. 그럼에도 저들 좌파 세력들은 오늘도 반미구호를 외쳐대고 있다.
예로부터 가까운 나라는 경계하고 먼 나라와는 친교하라 했거늘-- 우리의 비참했던 근세사가 되풀이될 운명의 날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본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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