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고통 속에 울부짖는다. 아니 기력이 없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두 눈을 잃은 소년. 울다가 지쳐 쓰러진 어린이. 까맣게 타버렸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다.
160여명이 숨지고 1,300여명이 부상당했다는 발표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민심이 흉흉하다. 분노가 번진다. 전해지는 현지의 분위기다.
소문이 난무한다. 왜 어린이들이 그토록 많이 희생됐나. 혹시 경애하는 수령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동원됐다가 참변을 당한 건 아닌가. 그렇다면 예의 특급열차가 사고가 나기 9시간 전에 지나갔다는 이야기는….
단순 사고다. 아니다. 김정일 암살기도 사건이다. 사고 원인도 발표와는 다르다. 다이너마이트 폭발에 의해 일어났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용천역 폭발사건 한 주가 지난 현재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한 둘이 아니다. 대폭발 사건이 났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왜. 어떻게….
영원히 미궁에 빠져들지 모른다. 비밀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회가 북한체제이므로.
용천 참사는 그렇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들의 지상 목표는 체제 유지다. 이는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한다. 사고 발생 후 북한 당국이 보여온 움직임을 추적할 때 드러나는 숨겨진 메시지다.
전 세계가 경악했다. 시간, 시간 브레이크 뉴스로 사고 정황이 전해진다. 적십자사가 나선다. 교황이 고통에의 동참을 호소했다. 용천 주민을 돕자는 온정의 물결이 전 세계적으로 번졌다.
보수냐, 진보냐의 정쟁도 중단됐다. 한국민 전체가 돕기에 나섰다. 누가 시킨 게 아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용천 주민들. 그들이 바로 내 피붙이처럼 느껴져서다.
모두 다섯 문장으로 간결히 보도됐다. 그것도 침묵을 지키다가 사고 발생 이틀 후에나. 용천 참사 관련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다. 아주 드라이하다. 생생한 르포 같은 건 있을 턱이 없다.
비명을 지르는 어린이. 오열을 삼키고 있는 부모들. 열악한 시설에 진통제조차 없어 망연자실해 있는 의료진. 이런 건 모두 외국의 구호 팀이 전한 이야기들이다.
피해자들은 왜 신의주 병원에만 입원해야 하는가. 이 부문에도 설명이 없다. 굶어죽을 수 없어 탈출했다. 반역행위다.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나간다. 그것도 마찬가지란 논리다.
환자를 받아 치료해주겠다는 중국의 제의를 거부했다. 병원선을 파견하겠다는 한국의 선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사이 귀중한 생명은 하나 둘 죽어가고 있는데도.
한 생명이라도 살리자고 호소한다. 누가. 외국의 구호 팀들이. 같은 시각 북한의 매체들은 건군의 날 행사만 집중 보도했다. 용천 사태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경애하는 수령이 애도의 전문을 발표했다는 이야기도 없다. 현장을 찾아가 유족을 위로했다는 말도 없다.
외국 구호팀이 약품이 부족하다고 호소를 하든 말든 그건 관심사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관심사는 오직 하나, 체제 유지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결사옹위’ 만이 강조될 뿐이다. 북한이 보여온 움직임이다.
단순 사고다. 김정일 암살기도.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북한 당국 발표가 맞을지도 모른다. 사고는 제아무리 안전시설이 잘 돼 있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니까.
용천 참사는 그렇지만 뭔가 한 가지 분명한 시그널일 수도 있다. 김일성-김정일 체제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균열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신호다.
수백만 아사자가 발생했다. 수십만의 탈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정치범만 수십만이다.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불러온 사태다.
굶어 죽고 고문 받다가 죽는다. 이뿐이 아니다. 산업전선에서도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시설은 낙후돼 있다. 생산은 독려된다. 안전시설이고 뭐고 돌아볼 틈이 없다. 무리한 작업이 진행된다. 사고는 나게 마련이다. 단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체제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이 체제는 이미 심한 피로증세를 보여왔다. 그 증세가 도져 어느 날 터진다. 대형 참사의 형태로. 뭐랄까. 일종의 내출혈이라고 할까. 용천역 폭발사건은 숱한 산업재해의 한 예일 수 있다.
병의 근원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조금의 변화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수령절대주의다.
어린아이들이 지금도 죽어 나간다. 조금만 일찍 손을 썼으면 살아날 생명이…. 체제옹위를 위해 외부 도움을 마다한 결과다. 죽음의 체제가 저지르는 또 다른 살인행위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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