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에다가 2333을 더 한다. 4337. 맞는가. 그러니까 4337년 전 단군 할아버지는 이날, 오직 이날 2004년 4월15일을 위해 나라를 세운 게 아니었을까. 한국의 4.15 총선을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빌고 또 빈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읍소한다. 운다는 말이다. 그래도 안 통한다. 이번에는 굶는다. 머리를 깎는다. 농성을 한다. 그러면서 치러진 선거다.
증오로 빠득빠득 이를 간다.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마치 세상이 끝이라도 나는 것 같다. 뭔가 결단이 나야지. 아마 지금쯤은 벌써 결단이 났을 거다. 이 글을 쓸 때는 어느 방향으로 결단이 났는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선거라기보다는 전쟁에 가깝다. 그래서 4천년하고도 3백여년의 그 유구한 역사는 오직 2004년 4월15일 그 하루를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선거라는 것, 국회의원을 뽑는다는 건 국정의 물줄기를 바로 잡자는 건데 딱히 잡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민생도 아니다. 안보도 아니다. 부패 추방도 아니다. 해서 나오는 자문자답은 이렇다. 네가 한국을 아느냐. 모른다.
그 여론이란 게 우선 그렇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진폭이 너무 커서다.
바람이라 했나, 그렇다.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아 종잡을 수가 없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탄풍(彈風)이 불더니, 노풍(老風)이다. 게다가 추풍(秋風)에, 박풍(朴風)이다.
바람은 결국 모두 멎었다. 4.15를 맞아서.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아젠다의 실종이다. 방향 없이 미친 듯 불어대는 바람, 맞아, 광풍(狂風)이다. 그 미친 바람과 함께 정책도 이슈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선거를 왜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빠졌다.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불던 바람이다. 북풍(北風)이다. 참으로 불가사의다.
한반도, 더 좁혀 한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의 향방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의 총선을 보는 해외의 시각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선거 결과 반미친북 세력이 늘어날지, 진정한 민주주의 세력이 늘어날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핵과 인권으로 압축되는 북한문제는 민족적 과제다. 동시에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과제다. 그 남북문제가 그런데 전혀 선거의 쟁점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불가사의하다는 말이다.
잠깐,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선거시즌 내내 불어온 광풍의 진원지를 캐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듯 싶어서다.
그 단초는 무한대의 사이버 공간을 점거한 말들, 그 메시지의 파도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알지 너희들이 그냥 죽지 않으리란 걸… 미국 놈들이 너희를 도와주고 있을지도 모르지… 촛불을 들어라. 역적의 무리를 모두 쳐내어라’ 친노(親盧)를 표방하는 단체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나오는 표현이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타도할 ‘적’(敵)이다. 헌법재판소도, 언론도, 선관위도, 검찰도. 그 섬뜩한 어휘구사는 혁명구호를 방불케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회교 원리주의 극렬 세력의 ‘지하드’를 연상시킨다.
실망, 분노, 좌절, 불안감. 총선의 계절에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은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 저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념투쟁, 의식혁명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성에의 호소는 이 상황에서 먹혀들지 안는다. 아예 귀를 막고 있으니까. 감성에의 호소만이 통한다, 울고, 빌고, 머리 깎고, 농성하는 선거운동 방식은 그래서 등장한 것이고.
4.15 총선의 숨겨진 진짜 중심 아젠다는 그리고 보면 북풍인지도 모른다. 교묘히 위장을 했지만 쏟아진 독선과 오만, 그리고 증오의 말들에서 그 으스스한 한기(寒氣)가 느껴져서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버리면 정치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성에의 호소가 먹히지 않을 때,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정치는 증발한다. 말은 민주주의와 동의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울고, 빌고, 굶고, 농성하면서 치른 4.15 총선. 그 결말은 그러면 무엇인가. 제2 라운드 대회전의 서곡은 혹시 아닐지. 심리적 내전(內戰)의 심화 말이다.
그 신호탄은 이미 쏘아 올려졌다.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또 한차례의 대규모 촛불시위를 예고하고 있으니까. 한국은 이미 내전(內戰) 중인지도 모른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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