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만들 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와 눈을 만들어 말은 보고 듣는 것의 절반만 하라고 암시했다. 말씀은 이와같이 천지를 창조할 만큼 위대하지만 조심해서 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창조주의 지혜요, 경고다. 창조주의 경고를 무시할 때 항상 탈이 나는 법이다.
노무현은 말로 망한 사람이다. 말이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한 말의 절반만 했다면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오명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대 누구보다 훌륭한 대통령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 취임 3개월만에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말했을 때는 오히려 ‘정말 순수하고 소탈하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잡초 정치인들은 모두 제거하자’며 섬뜩한 말을 하더니 측근들의 부패가 하나둘씩 드러나자 갑자기 ‘대통령 재신임을 묻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대선 승리 1주년 행사에서는 ‘떨쳐 일어나 시민혁명을 하자’며 선동까지 했다.
대통령이 무슨 골목대장인가. 국민들이 자기를 위해 손들어주는 거수기인 줄 아는가. 누구를 믿고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난해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이 없었으면 우리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며 외교적 수사를 넘는 아슬아슬한 발언을 하더니 일본에 가서는 ‘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공산당 활동도 허용돼야 한다’고 말해 주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음’에 있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말은 인간이 갖는 가장 놀라운 무기요, 훌륭한 도구요, 위대한 자본이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쁨과 희망의 꽃도 피고 분쟁과 멸망의 비극도 생긴다. 그래서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있으며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근래에도 말 때문에 망한 사람은 한 두사람이 아니다.
대낮에 폭탄주를 마시고 ‘조폐공사 파업은 검찰이 유도했다’고 말해 물러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 여성장관에 대해 ‘아키코상(명자)은 아직도 곱다’고 한 전 환경부 공무원, ‘미국의 여성 국무장관과 포옹해보니 아직도 가슴이 탱탱하더라’고 말했다가 망신을 당한 이정빈 전 외통부 장관 …
진정한 지도자는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야한다. 경청은 지도자의 첫째 조건이다. Leadership의 L은 Listen이다. 지도자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커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말을 많이 하면 결코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의 말은 국가 제도에 따라 법일 수도 있고 경제, 사회, 문화, 생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보고 국민에게 필요한 사항을 결정만 하면 된다. 말이 필요 없다. 말을 하려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이어야 한다. 지난 얼마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불안이 앞서곤 했다. 또 무슨 편지풍파를 일으킬까 걱정이 돼서다.
설문지화(舌門之禍)라는 말이 있다.
말은 복(福)의 문(門)인 동시에 화(禍)를 부르는 문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했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도 함부로 내뱉는 거친 말로 유권자들의 냉정한 심판을 받았다. 국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치인들 말하는 것을 보면 꼭 무슨 범죄 심문하듯 따지고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는데 모두 남 때문에 잘 안되는 것처럼 변명만 내려놓는다. 말싸움뿐이다.
나라든, 사회든, 가정이든, 지도자의 존재는 그 구성원의 기대와 신뢰를 전제로 한다. 기대와 신뢰를 주지 못하는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며 오래 가지 못한다. 가장이 가족들에게 즐거움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더 이상 가장이 아닌 것과 같다. 기대와 신뢰를 주기 위해서는 열심히 듣고 필요한 말만 해야한다.
이번 사태가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노무현이 던진 고도의 전략적 승부수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식물 대통령이 된 지금의 비극은 그의 말에서 비롯됐고 국민들도 더 이상 함부로 말하고, 말많은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기준<부국장 대우·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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