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역사와 언어,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으로 이뤄진 두 나라가 있다. 한 나라는 지난 50년 간 반정부 시위와 유혈 진압, 시민 혁명과 쿠데타, 지도자 암살과 숱한 정변을 겪었다. 다른 나라는 단 한차례의 정권 교체도 없이 일사불란한 정치적 안정을 이뤄왔다. 이들 나라 중 과연 어느 쪽이 경제적 성공을 이룩했을까. 모든 사람이 알기 때문에 답을 말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두 나라 모두 유럽 문명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국으로 거대한 영토와 무궁한 자원, 고급 인력을 갖고 있다. 한 나라는 지난 50년 간 시민 불복종 운동과 유혈 진압, 인종 폭동과 지도자 암살, 사임, 탄핵을 겪었다. 다른 나라는 수십 년 간 일당이 권력을 유지하며 철옹성 같은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들 나라 중 과연 어느 쪽이 경제적 성공을 이룩했을까. 이 또한 다 아는 문제다. 한 나라는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가 되고 다른 나라는 경제적 기반 붕괴와 함께 역사의 쓰레기 통으로 사라졌다.
상식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가 불안한 나라보다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유리하다. 180년의 역사 가운데 200차례에 가까운 쿠데타를 경험한 볼리비아는 여전히 가난한 나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막상 각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적 안정이나 합법적 권력 승계가 반드시 경제 성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유일한 마르크시스트 정권이었다. 그가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물자를 공급하자 국제 카르텔의 보이콧, 기득권 층의 반발, 극심한 인플레 등으로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피노체트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는 집권 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만의 제자들을 등용, 어느 나라보다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지금 칠레는 중남미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탄탄한 토대를 굳혔다. 한국에서도 불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해 온갖 비판이 쏟아지지만 그들이 한국 경제를 망쳤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제기된 바 없다.
산업 혁명 후 지난 수백 년 간 인류가 얻은 가장 중요한 경제적 교훈은 시장 친화적 정책을 펴는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다. 그 정책을 펴는 사람이 4성 장군이냐 노동 운동가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얻어진 경제 성장이 폭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범죄를 덮을 수 있느냐는 별개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그러나 탄핵 당일 폭락했던 주가와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 관련 금융 상품들은 안정을 되찾고 있다.
8·15 해방 후 민주주의를 미군의 선물로 받은 한국민은 자본주의 또한 그 역사적 기원이나 시장 원리, 사회주의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 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마구잡이로 수입해 지금까지 사용해왔다. 이런 이론적 기반의 취약성에도 불구, 그나마 체제가 기능해 올 수 있었던 것은 6·25란 값비싼 교훈을 통해 ‘공산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로구나’ 하는 인식이 한국인의 머리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50년 간 한국은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나 많은 한국인과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해 세계 최빈국의 하나이던 한국이 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느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높은 교육열,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근면함 등도 원인이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출 주도를 기조로 한 시장 친화적 정책이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서 이 교훈은 차차 잊혀져 가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부자 집 아들이 돈 귀한 것을 모르듯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와 정치인들은 어떻게 한국이 지금 여기까지 왔는지 잊고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힘들면서 중요한 것의 하나가 기억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사건 발생 후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유월절이면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과 해방의 의미를 되씹는 것은 그래서이다.
한국의 지식인과 지도층은 젊은 세대에게 한국 경제 성장의 비밀을 전수하는데 실패했다. 대통령 탄핵 여부가 아니라 사회 지도층이 경제 발전의 진실을 기억하고 실천하느냐가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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