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바리새주의인가
한주식/미주 목양교회 목사
7일 열리는 2004년 LA 마라톤에 이곳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무더기로 출전한다는 소식에 해당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 동안 이곳 대다수의 한인교회들은 주일 마라톤에 대해 한인타운을 둘러싼 LA의 중심도로들이 차단되어 성도들이 교회에 가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때는 서명운동을 벌여 마라톤을 토요일로 옮겨줄 것을 수 차례 당국에 건의했음을 상기해 보면 이러한 주변 교회들의 간곡한 소원을 아랑곳하지 않는 채 오히려 그 마라톤에 전도와 모금을 이유로 삼아 동참하겠다니 그 자체로 매우 충격적이다.
그 담임목사의 설명은 뛰면서 전도도 하고 모금도 하여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것이다. 주일 마라톤에 200여명이 넘는 신자들이 이미 헌신을 다짐하여 연습에 강훈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보도에 대한 일부 교인의 투고 내용을 보면 더욱 경악과 혼돈스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율법주의에서 깨어나자” “주일 마라톤 왜 잘못인가” 등등.
여기에 대하여 다음 몇 가지를 묻고 싶다. 첫째, 안식일(주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전통적인 주일 개념은 이 날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날이요 이 날은 예배를 위한 목적이 외에 다른 것을 금하고 있다(레23:3). 주일을 예배와 안식을 목적으로 한다면 사고 파는 행위, 음악회 감상, 외식 문제, 여행, 취미 생활 등은 축소화되는 일이지, 그것이 “하라, 하지 말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주일 마라톤 강행을 반대하는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대형 교회’라는 무기를 들고 “바리새인, 율법주의, 강단만 고집하는 목사들…” 운운은 어쩐지 목회자인 본인 역시 마음이 서글퍼지고 혼란스럽다. 바리새적 율법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왜 주일 마라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리새주의며 율법주의인가.
기독교는 구제와 봉사를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제와 봉사가 기독교의 존재 이유는 될 수 없다. 구제와 봉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있어서 불신 영혼들에게 전달되어지는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오늘날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으며 모든 종교는 같이 연합해야 하며 노동운동, 윤리운동, 박애주의 운동, 구제운동이 복음이라고까지 말하는 소위 종교 다원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주일날에 마라톤을 강행한다는 것은 이민교회에 첫 번째 맞이하는 슬픔이다. 시대가 변하고 타락한 세속주의 문화가 밀려오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실추된 이민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다.
칼빈을 생각하자
박영남/샌타클라리타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만일 16세기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미국 내의 이민교회는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개신교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다. 장로교의 경우 칼빈이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면서 그 도시 전체를 장악하고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각 분야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었을 때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유학 온 존 낙스가 칼빈의 문하에서 배운 후 고국으로 돌아가 스코틀랜드에 세운 교회가 장로교의 시작이다. 장로교가 칼빈의 저서 ‘기독교 강요’나 그의 성경 주석서들에 나타난 칼빈의 해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루터와 칼빈은 스포츠를 참 좋아했다. 루터는 잘 아는 대로 볼링의 룰을 처음으로 체계화했다. 그가 볼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홉 개의 핀은 원수 마귀들이고 볼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볼이 핀을 넘어뜨릴 때 느끼는 쾌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칼빈도 스포츠를 좋아했다. 그는 본래 병약한 체질에다가 목회의 과중한 업무와 제네바시 전체를 관장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55세를 일기로 일찍 타계하고 말았지만 주일예배가 끝나면 교인들과 함께 당시 유행하는 여러 가지 운동을 즐겨했다.
오늘날 칼빈의 본고장 제네바를 중심으로 스위스가 세계 스포츠의 총 본산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가 그 곳에 있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제네바 인근 로잔에 있다. 윌슨 대통령이 유럽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연맹을 제네바에 유치한 것은 그가 역사학자요 장로교인으로서 칼빈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칼빈이 주일 예배 후에 행하는 마라톤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우리 이민 교회와 오늘의 LA 사회를 본다면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주일 마라톤은 칼빈의 시대나 오늘날 우리의 시대나 동일하다. 16세기에 예배 후 교인들과 함께 스포츠를 즐긴 칼빈은 오늘날 살아있다면 우리들과 함께 달릴 것이다.
주일 마라톤 철회하라
박장균/중앙 교회 목사
갓 부임한 젊은 목사가 주일 마라톤 참가를 선언할 수 있다는 용기에 일단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보수적인 대형 교회가 파격적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수용성도 우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주일성수는 생명이고 존재 자체다. 주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주일성수가 흔들리면 교회와 신앙이 흔들린다. 60년대 놀랍게 성장했던 한국 교회는 주일성수가 흔들렸기에 양적으로 팽창은 하였으나 결국은 생명력을 상실한 교회가 되고 말았다.
주일 성수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못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주일 마라톤을 또 다른 목회 방법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궤변이다. 주일 마라톤은 성수를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 지키는 것이다.
주일 마라톤이 올바른 지 다시 한번 심사숙고 해 새로운 깨달음 속에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 본다.
복음 전파 수단이다
스탠리 최/샌디에고
26.2마일의 마라톤 구간을 뛴다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요즘 LA 한인타운에서 일고 있는 마라톤 열풍은 좋은 현상이다. 내 자신도 마라톤에 심취한지 2년3개월이 되었다. 건강보험을 위한 초기 신체검사에서 과체중, 고혈압 등등 적신호가 나왔다.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시작한 걷기 운동이 3번째의 마라톤 참가에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1년 만에 과체중, 고혈압 등등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정상적인 보험료를 내고 있다.
LA 마라톤에 한인 교회에서 단체로 참석한다니 참으로 파격적인 신앙의 결단이다. 그들과 함께 뛰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마라톤을 즐기는 많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세상 속의 교회로 역사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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