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차원 개입보다 지역 주민 의견 반영돼야
서양 문명 원류 아테네·예루살렘 정면 충돌
부시 대통령이 동성 연애 결혼을 금지하는 연방 헌법 수정안을 제안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가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왜 이 문제가 이렇게 시끄러워졌으며 이를 허용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 어느 쪽이 옳은 지 살펴 본다.
서양 문명은 그리스 문명과 유대-기독교 문명의 합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문명은 공통점도 많지만 융화될 수 없는 요소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동성애에 대한 태도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만연했다는 것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최근까지 서양에서는 금기시 되던 사실이다. 1978년까지 영국에서는 이 사실을 교과서에서 검열을 통해 학생들이 알지 못하게 했다. 아테네가 황금기를 구가하던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 전역에서는 나이 든 성인 남성이 젊은 소년을 섹스 파트너로 삼아 같이 지내는 것이 보편화 돼 있었다. 그러다 이 소년이 성인이 되면 다시 다른 소년을 파트너로 삼았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하나인 플라톤의 ‘심포지엄’에도 동성애를 찬미하는 구절이 나온다.
동성애는 그리스가 찬란한 문화를 이루는데도 지장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군사적으로 강국이 되는 데도 기여했다. 당시 많은 그리스 인들은 “서로 사랑하는 동성애자로 이뤄진 군대야말로 강한 군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동성애자들로 이뤄진 부대 중에서도 가장 강한 도시 국가였던 스파르타를 무너뜨린 테베의 ‘성스런 군단’은 특히 유명했다. 이 부대가 마케도니아 군에 의해 괴멸되면서 그리스의 독립도 끝났다.
그리스 인들이 동성애에 관대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기독교 문명의 뿌리인 유대 문명은 이를 극형에 처할 범죄로 생각했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은 유대교 율법의 상당 부분을 버렸음에도 동성애에 관한 한 유대교를 능가하는 가혹함을 보였다. 그 결과 기독교가 서양의 국교적인 지위를 누렸던 중세 천년간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고문 투옥, 처형 등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유럽에서 동성애자들이 다시 기를 피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문명이 재발견된 15세기 이탈리아였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하나로 꼽히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나텔로 등 르네상스의 대가들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동성애와 문화 발전이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서양 문명권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뚜렷이 동성애에 대한 차별 철폐로 바뀌고 있다. 1989년 덴마크는 숱한 논란 끝에 사상 처음으로 동성간의 결합을 이성간의 결혼과 같은 것으로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으며 유럽 여러 국가가 이를 따르고 있다.
2001년에는 네덜란드가 동성애자가 결혼은 물론 입양도 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으며 2002년에는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스위스가 그 뒤를 따랐다.
유럽에 비해 기독교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는 미국에서는 동성애 결혼에 관한 논란도 오히려 늦은 편이다. 1996년 하와이 법원이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 내 동성 결혼 논쟁은 일기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연방 상 하원은 특정 주가 이를 인정하더라도 연방 차원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주도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도록 한 ‘결혼 수호법’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으며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그러나 2000년 버몬트 주가 처음으로 ‘민법적 결합’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 동성간 결합도 결혼은 아니지만 결혼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면서 논쟁은 새 국면을 맞게 된다. 주정부들이 잇따라 이를 허용할 움직임을 보이자 2003년 5월 연방 상 하원은 결혼을 남녀간의 결합으로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연방 대법원은 항문 성교를 금지한 텍사스 주법을 무효화하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동성애 결혼 논쟁에 불을 지른 기폭제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 6월에는 캐나다 온타리오와 브리티시 컬럼비아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으며 11월에는 매사추세츠 대법원이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을 무효화시켰다.
이렇게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동성 결혼 문제가 미국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며 대세는 허용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개빈 뉴섬 시장이 앞장 서 주법을 어겨가며 동성애자간 결혼 라이선스를 발급해 주고 있으며 시카고도 그 뒤를 따를 기세다.
리처드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동성 결혼이 전통적인 결혼을 위협한다며 이를 금지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전통 결혼을 위협하는 것은 이혼이지 동성애자들이 아니다”라며 이를 거부했다.
동성애자들은 수천 년 간 엄청난 박해를 받아왔다. 지금 와서 이들을 극형에 처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만도 큰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결혼까지 허용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내 여론이 반반으로 갈리고 있다. 결혼 찬성론자들은 동성애자도 똑같은 시민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한 평등 조항에 따라 결혼을 비롯 모든 권리를 똑같이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개인간의 자유 선택에 의해 이뤄진 결합을 사회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결혼이 이성간의 결합이라는 것은 상식이며 동성간의 결합을 허용할 경우 결혼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 사회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개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은 허용한다면 일부 다처제는 물론 노예제나 근친 상간도 허용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이를 헌법을 고쳐서까지 막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 같다. 헌법이 제정된 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정안이 통과된 것은 27번뿐이다. 그 중에서도 처음 10개는 원래부터 수정되기로 예정된 것이었다. 이렇게 수정안 통과가 힘든 것은 헌법 입안자들이 헌법을 자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정 절차를 연방 상 하원 2/3의 동의와 주 정부 3/4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등 지극히 까다롭게 해놨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수정안 중 국민의 권리를 박탈한 것은 금주를 규정한 수정헌법 18조뿐이다. 술의 해악을 막겠다는 좋은 의도로 제정된 이 법규는 시행이 불가능함이 명백해지자 마피아들의 배만 불려준 채 14년 만에 폐기되고 말았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 상규와의 충돌은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숙제다. 이를 풀기 위해 시민들 간의 토론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의회와 정부가 있다. 미국 헌법 입안자들은 연방 정부의 권한을 국방 등 극히 제한된 부분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주 정부와 국민들에게 위임했다.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힘들겠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그 다음에는 이 폐기를 주장하는 운동으로 미국이 오랫동안 시끄러울 것이다. 부시가 이를 불쑥 들고 나온 데는 보수파들을 동원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인기도를 회복해 보자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동성애 결혼은 지역 주민의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 연방 정부가 개입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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