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장>
훈장을 여러 개 가슴에 단 군인에게 한 친구가 말했다.
“그 훈장 하나만 주게“
“주지, 주고 말고.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네. 50m 전방에서 내가 쏘는 총알을 피해 보게. 나는 그러한 총알을 수없이 피한 대가로 이 훈장을 받았다네.”
6.25 전쟁에서, 월남전에서 극한의 상황을 견뎌내며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긴 대가로 가슴에 달 수 있었던 명예스런 훈장. 그러나 노병들이 가슴에 단 훈장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여생을 조용히 보내기에는 이 나라가 너무도 혼란스럽다.
작금 정치권의 혼란과 부패와 무질서, 여 야가 치고 받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비수를 겨누는 모습은 한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한다. 노병들은 걱정한다. 500년 전 임진왜란 직전, 100년 전 대한제국의 말기가 이때보다 더 혼란스러웠을까?
100만 명의 청년실업자가 길거리를 헤매고,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직장도 없고 결혼도 못한 채 방황하는 아들에게 용돈을 쥐어줘야 하는 노병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경제불황을 이기며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는데 우리 경제는 불황의 긴 터널을 언제 통과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은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차원을 넘어 국가해체를 걱정해야 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국가가 국익을 위해서 추진하는 국책사업이 일부지역 주민들의 이기주의에 의해 번번이 차단된 채 수 천억 원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을까?
6.25 때 5만4,000여 젊은이들이 희생당하며 우리 안보를 지켜준 동맹 미국. 지금도 한강 이북에 3만7,000여 미군이 우리와 함께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이러한 동맹 미군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김수환 추기경이 일제시대 학생시절에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황국신민이 된 소감을 쓰라”는 것이었다. 이때 김수환 학생은 간결하게 두 줄로 답안을 작성했다. “나는 황국신민이 아니다. 그래서 써야할 소감이 없다.” 존경받아야 할 어른이 귀한 이 나라에서 존경받고 있는 극소수의 어른 마저 무시하고, 깔아뭉개야만 직성이 풀리는 철부지들.
공산주의자들의 혁명 찬양가인 ‘적기가’를 부르며 청와대를 폭파하겠다고 부대를 이탈하는 군대를 향해 박수를 치며 몰려드는 1,000만 영화관람객들은 1.21 사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길인 줄 알면서 총선에서의 표를 의식해 FTA 비준안과 이라크 파병안에 극한적 반발을 서슴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은 국정을 운영하는 국회의원인가, 국가이익을 좀먹는 국해(國害)의원인가.
불과 4년 전에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내 목숨을 바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던 선량들. 지금 그들에게는 돈 썩는 냄새만이 진동한다. 이들에게 속아서 표를 던졌던 국민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없지 않다.
다시는 이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운명을 단숨에 바꾸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가장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은 선거혁명이다.
4.15 총선이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국민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선량들을 뽑아야 한다. 그 알량한 지연, 학연, 혈연 때문에 던져준 한 표 때문에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가?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라” 맹세했던 노병들은 이 선거가 끝나고 이 나라에 안정이 오면 편안한 마음으로 동작동에, 대전 국립묘지에 전우들을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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