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미국과 비교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미국의 아무개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국난을 헤쳐나갔다. 참으로 대단한 지도자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은….
인물만이 아니다. 제도가, 시스템이 비교된다. 미국의 정치는 이러저러하다. 그런데 한국은 이 정도다. 대체로가 이런 식이다.
애당초 잘못된 게 아닐까.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와 조금 살만해진 한국을 비교한다는 게. 그리고 그 의도는 뻔하다. 왜 한국은 그다지도 못났느냐는 식의 결론이 유도될 수밖에 없어서다.
일본과 비교해도 그렇다. 영국, 프랑스 등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 결론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비교의 시야를 활짝 넓히면 어떨까.
그러다 보니 한 나라가 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산맥의 고립된 지역에 위치해 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다. 힌두교도의 나라다. 왕이 다스린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다. 네팔이다.
석유도 없다. 주요 전략지역도 아니다. 그러므로 항상 소외돼 왔다. 당연히 외신을 타지 않는다. 그런 네팔이 요즘 주목을 받고 있다.
왜. 극히 괴이하게 들리는 이유 때문이다. 모택동주의 공산반군의 도전에 네팔 왕정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거다.
잠깐, 모택동주의라니. 도대체 때가 어느 때인데 모택동주의란 말인가. 설명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여하튼 그게 엄연한 네팔의 현실인 모양이다.
낡은 이데올로기다. 그 모택동주의, 다시 말해 노동자·농민 중심의 혁명이념을 네팔의 좌파는 100%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매일같이 시위가 벌어진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다. 곤봉을 든 경찰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정부군과 공산반군의 충돌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희생자가 수 천명이다. 반군은 전 국토의 4분의 1을 장악했다고 한다.
미국이 우려를 표명했다. 이웃인 중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제스처를 보냈다. 모택동이 세운 중국이니까 공산반군을 지원이라도 한다는 걸까.
정반대다. 공산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네팔 정부군의 반군소탕작전을 지원키로 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나저나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오늘도 파업이다. 민주화 시위다. 그렇지만 무능하기 짝이 없는 왕정이다.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는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속수무책이다. 관료들은 썩었다. 게다가 꽉 막힌 신분제는 요지부동이다. 경제는 최악이고.
그렇다고 좌파들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할 수도 없다. 그 종착역이 너무 뻔해서다. ‘네팔의 공산화’일지도 모르니….
제3 세계에서 모택동주의가 유행이던 시절, 그러니까 60년대의 흐름이 후폭풍이라도 되어 몰아친 것 같다. 이 상황에서 네팔인들은 탄식하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중·동으로 병칭되는 한국 내 보수 신문을 대표하는 한 논객의 칼럼 제목이다. 어딘가 닮은꼴의 탄식이다.
“…홍위병적으로 제압 당하는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어디까지 밀려갈 것인가.… 예전엔 반체제가 곧 민주화였고 반독재였다. 지금은 체제가 탄압 받는 시대로 가고 있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총선을 ‘올인’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시점에서 역시 보수 신문의 한 대표논객이 내린 답이다.
“왜 정권을 친북좌경의 시각에서 보게 됐는가. 그 이유는 정권 스스로 잘 알 것이다. 친북좌경은 국기(國基)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엄존한다. 또 사회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민주’를 외쳐대며 영역을 넓혀 가자는 것이 좌파 세력의 변함 없는 전술이란 것도 우리는 분명히 경험했다.” 다른 논객이 던진 답으로, 그 표현이 좀 더 구체적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이렇다. 한국의 운동권이 주사파로 뒤덮였던 그 시절, 그러니까 80년대의 의식이 후폭풍이 돼 한국 사회를 덮치고 있는 형국이라는 거다. 친북(親北)·친중(親中)·반(反)미는 그리고 보면 필연의 방향이다.
이 현상은 그러면 다양성이 보장된 한국 사회의 여유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주장대로 ‘서울이 평양이 된다’는 심각한 흐름의 징후인가. 총선 결과가 어느 정도를 가늠해 주게 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한 가지가 빠졌다. 네팔과 비교하니 그래도 으쓱댈 만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시계는 그래도 60년대를 가리키지 않고 있다는 은근한 자부심과 함께. 맞아?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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