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부터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 같으면서도 각 가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케이스를 심리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혼 후 자녀양육권을 가진 한쪽이 다른 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데리고 타주로 이사할 수 있느냐를 가리는 것이다.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의 양육권 법정투쟁을 그린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속편을 보는 듯한 이번 케이스는 1995년 이혼한 한 커플의 10년 가까운 전쟁이 핵심이다.
이혼시 2살, 4살의 두 아들은 엄마가 기르기로 했다. 수년후 재혼한 엄마는 새 남편의 직장이 있는 오하이오주로 이주하기로 하고 법원에 허가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방법원은 2001년 8월 “자주 볼 수 없는 곳으로의 이주는 생부와의 관계에 부정적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사 가려면 양육권을 넘겨라”는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엄마는 다시 항소를 했고 2002년 5월 고등법원은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빠가 대법원에 상고를 한 것이다.
이제 대법원의 7인 판사들은 ‘이주가 자녀에게 해롭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양육권자는 이사할 수 있다는 1996년의 소위 ‘버지즈 스탠다드’ 판례에 대한 유권해석을 해야 할 차례다.
그리고 워낙 흔한 이혼으로 비슷비슷한 경우를 잔뜩 물고 있는 엄마와 아빠들, 이혼 변호사, 법학자, 사회학계 전문가, 민권운동. 단체들이 내려질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 9년이 넘게 자녀 양육권 싸움을 계속하는 양측 당사자는 모두 ‘자녀를 위해서’라고 투쟁이유를 밝히고 있다. 또 변호사나 판사들도 첫째도, 둘째도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성장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자녀들을 위한 것인가? 부모의 이혼으로 아픔을 이미 겪은 자녀들이 양육권 빌미 투쟁 와중에서 온전하게 자랐을까? 자녀양육을 몰라라 하는 부부들도 많다는 데 서로 맡겠다는 부모가 그나마 다행이라며 고마와 할 것인가?
최근 한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신랑 신부의 중요하객으로는 양가 부모외에도 신랑의 전 결혼에서 난 자녀들이 있었다. 엄마 손에 자라면서도 아빠의 재혼에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먼길을 달려와 동참한 그들을 모두 대견하게 바라봤다.
리셉션에서 아빠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앞에 나온 대학생 아들은 “아빠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그동안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대목에서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신랑석의 아빠도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예 눈물을 쏟았다. 밑 좌석에서 꽃을 달고 앉아 있던 고교생 누이는 아무 것도 못본 척 접시의 음식만 집어먹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축하객들도 순간 숨을 죽이며 목메어 말을 계속하지 못하는 청년과 눈물을 닦는 신랑 아빠, 모른척 하는 딸아이의 아픔에 같이 가슴 아파했다. 그들이 아무리 잘 자란 듯 해도 엄마, 아빠의 이혼후의 과정과 시간이 얼마나 모진 상처가 되었는지가 한눈에 뵈는 순간이었다.
서로 갈라졌지만 그들의 부모가 자녀 양육에 한치라도 소홀했다고 보진 않는다. 아빠의 재혼식에 선선히 달려와 만인앞에서 밝게 웃을 수 있는 것만 봐도 잘 컸다 싶었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아픔과 남은 모르는 피멍울이 아빠의 새 출발을 축하해야겠다는 각오에도 불구하고 목을 메이게 했을 것이다.
대학생 아들이 울먹이는 모습이 눈에 밟히던 그 결혼식과 아이들을 양육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10년간을 싸운 부부가 다시 대법원에서 치고 받겠다는 장면이 자꾸만 떠오르고 있다.
갈라진 부모가 양육권한에 관한 아무런 문제없이 자녀를 키웠어도 그 자녀가 공개석상에서 눈물 흘릴 정도로 아픔이 큰데 앞으로도 얼마나 이어질 지 모르는 엄마, 아빠의 전쟁을 계속 봐야 하는 또 한쪽 자녀들은 어떨까. 도대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마음속에서 매순간 통곡을 하고나 있지 않을까, 또는 내면 켜켜에 분노나 증오를 쌓아두지나 않을까.
부부간의 문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남의 가정사를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던 감히 판단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가타부타 말하지 못한다.
다만 번듯하게 잘 큰 청년이 자신의 성장기를 회상할 때마다 가엾었던 자신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는 슬픈 장면은 더 이상 보고 싶지는 않다. 또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과 행동을 하면서도 힘없는 자녀에게 ‘너희를 위해서’라는 말을 앞세우거나 더욱이 자녀 양육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격없는 부모는 주변에 없었으면 좋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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