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체념조의 한탄이라도 들려오는 것 같다. 존 케리의 천하라도 됐단 말인가. 뚜껑을 열자마자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무엇이 잘못된 건가 도대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조그마한 주의 주지사였다. 그렇지만 월드 와이드 웹, 그렇다. 인터넷의 파워에 일찍 착안했다. 그래, 그걸 이용하는 거다.
바로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돈이 몰리고, 사람이 몰린다.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게 2003년의 상황이다.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
2004년 대통령선거 민주당 예선은 하나 마나가 아닐까. 선두주자와 2, 3위의 격차가 너무 크니 말이다. 이게 연초까지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2등도 아니다. 3등, 4등이다. 정치 판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 3, 4등은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어째 이런 일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케리가 이겼다. 이건 전혀 예상 밖이다. 그런데 뉴햄프셔에서도 또 케리다. 두어 차례의 수퍼 화요일을 거치면서 대세는 이제 거의 굳어진 느낌이다.
줄줄이 사퇴다. 가망이 없어서다. 게파트가, 리버맨이 물러섰다. 4성 장군출신 클라크도 도중하차다.
온라인에서의 성공이 득표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다. 인터넷이 줄 수 있는 모든 것, 그것을 인터넷은 빼앗을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흥한 자, 인터넷으로 망한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비판이다. 마치 하워드 딘의 패배를 예측이라도 한 것 같이.
‘닷 컴 비즈니스’와도 비교된다. 스스로 도취해 심각한 문제점은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계속 베팅이다. 주식 값은 치솟는다. 아직 1센트라도 이윤을 내기도 전인데 말이다. 그러니 거품이다.
이윤이란 ‘닷 컴 정치’에서는 바로 표다. 그리고 보니 ‘그들’끼리만의 과투자였다. ‘투자자 따로, 소비자 따로’였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는 이 경우 물론 유권자이고.
과투자를 한 ‘그들’은 그러면 누구인가. 민주당 내 반(反)기득권층 그룹이다. 좌파 성향의 아웃 사이더들이다. ‘그들’이 이라크 반전 시위를 계기로 뭉쳤다. 그리고 인터넷이란 대항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흘렸다. 분노의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확산된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딘을 단순히 인터넷을 가장 잘 이용한 대선 출마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터넷이 만든 출마자로 보아야 한다. 인터넷을 단지 도구로 사용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딘의 캠페인은 ‘온라인 에토스’에 흠뻑 젖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관심의 포인트는 그렇지만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 에토스의 대권주자 이야기가 미국의 대선에서는 왜 실패한 에피소드로 끝날 수밖에 없는가다. 왜.
모든 건 듣는 데서 시작된다. 변화와 개혁의 메시지가 전파된다. 사람들이 귀 기울인다. 들을 만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의 행간 행간에는 그러나 분노가 스며 있다.
개혁의 메시지는 계속된다. 동시에 그 소리의 실체도 드러난다. 생각 없이 마구 떠든다. 누가 그랬더라. 광우병 아닌, 광구병(狂口病)에라도 걸린 것 같다고. 게다가 독선적이다. 혼자 잘 났다는 말이다.
언론이 나선다. ‘펀딧’(pundit)으로 불리는 비평가들도 저마다 거든다. 사람들은 듣는다. 그리고 판단한다. 대권을 맡기기에는 어딘가 불안하다. 동시에 인터넷이 가져온 거품은 가라앉았다.
대권후보, 다시 말해 공직자 검증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시스템의 주요 축이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제도권 언론이다. 또 다른 축이 지식인 그룹이다. 이들은 선동을, 과다한 포퓰리즘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미국적 상식이 딘의 도전을 정치 실험으로 그치게 했다는 거다. 뻔한 결론이다. 진부할 정도다. 그 뻔한 이야기를 왜 그런데 길게 늘어놓았나. 그런 상식조차 안 통하는 게 한국의 세태인가 싶어서다.
폭민(暴民)의 시대라고 했다. 담론의 영향력, 이런 건 없어진지 오래다. 결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너는 지껄여라, 나는 내 맘대로 한다.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세태라는 말이다.
지식의 권위, 언론의 권위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종교의 권위조차 부정되는 판이니까. 무엇이 이런 현상을 가져왔나. 인터넷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망국론이다.
욕설과 저주, 사이비 지식이 넘쳐나는 인터넷. 그 인터넷이 디지털 포풀리즘으로 기울면서 한국의 정치는 파국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는 거다. 맞는 말인가.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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