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사는 한 여성이 며칠 전 동네에 새로 단장한 호텔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평소 지역사회 발전에 남다른 의식을 갖고 있던 이 여성은 이왕이면 리모델링한 동네 호텔을 이용하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여성은 35달러짜리 식사와 23달러짜리 포도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냉수를 한잔 부탁했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냉수 한잔에 4달러가 첨가됐다. 이 여성은 황당했으나 웨이터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조용히 나왔다. 집에 와 식당 매니저에게 “그럴 수 있냐”는 항의성 편지를 보냈다.
이내 매니저로부터 답장이 왔다. 사과의 내용이 들어있겠지 하며 편지를 읽어 내려간 이 여성은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손님께. 우리는 물을 돈 주고 사옵니다. 냉수에 들어가는 얼음을 얼리려면 전기료가 듭니다. 그리고 물을 서브하는 직원에게 봉급을 주어야 하고 손님이 앉아서 물을 마시는 식당 분위기를 꾸미는 데도 돈이 들어갑니다. 또 물 컵을 닦는 데도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니 물을 공짜로 마시려고 한다면 전근대적인 손님입니다.”
매니저로부터 사죄는커녕 당연히 지불해야 할 물 값을 안 내려는, 세상 돌아가는 것 모르는 손님 취급을 당했으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 여성은 가까운 동네 호텔을 아끼려던 마음이 싹없어졌고 다시는 그 곳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동네 호텔을 도와주려던 이 여성의 호감을 매니저가 반감으로 되돌려 준 것이다.
영국 언론에 게재된 이 웃지 못할 일은, 한 쪽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다른 쪽에서 이를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탱크에 개스를 가득 채워도 엔진 점화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차가 굴러갈 수 없는 이치다.
‘한인 정치력 신장’ 이슈가 어바인 시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불붙을 기미다. 오는 11월 시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치러질 선거에 한인이 도전했다. 한인 주민이 늘고 있는 하이텍 도시 어바인에서의 한인 시의원 탄생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다.
헌데 한인후보가 1명이 아니라 2명이 될 것 같다. 한 후보는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다른 후보는 채비 단계다. 단일화의 중요성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하지만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고수하고 있어 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주류 정계에 진출한다고 해서 팍팍 밀어주려 했는데 2명이 동시에 출마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다음 몇 가지 조건 중 하나만이라도 충족된다면 어느 일방의 꿈을 꺾는 단일화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첫째, 2~3명을 뽑는 선거에서 두 후보가 100% 당선돼 한인의 정치력을 만방에 과시할 수 있다면 굳이 한 후보를 미리 저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둘째, 두 후보가 공략할 유권자가 인종별로 완전히 다르다면 같이 출마하지 말란 법도 없다. 서로 다른 인종그룹에 집중해 유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면 그만이다. 이런 경우 당선되든 안 되든 반드시 단일화 실패에서 패인을 찾을 수 없다.
셋째, 지역적으로 차별화한 유세를 벌인다면 단일화 지상명령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한 후보는 어바인 동부와 북부, 다른 후보는 어바인 서부와 남부에서만 힘을 쏟아도 당선이 가능하다면 단일화를 염두에 둘 근거가 박약하다.
넷째, 한 후보는 20~40대 유권자만을 찾아다니고, 다른 후보는 50~70대 유권자들에 사활을 건다면 “하나로 뭉쳐야 산다”고 반복할 일이 아니다. 특정 세대에 어필하는 정견으로 승부를 걸겠다면 억지 단일화가 오히려 불합리하다. 마지막으로, 한 후보는 한인의 표와 자금지원을 전혀 원하지 않고 다른 후보는 한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호소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어바인 시의원 선거판이 결코 이러한 모습이 아니라면 후보단일화 외엔 대안이 없다. 한 후보는 시장선거에 나선 현 시의원과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고 다른 후보는 현지에서 교육위원으로 선출된 경력을 갖고 있다. 어느 한쪽도 양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1987년 대선 때 김대중, 김영삼 후보가 국민의 열망을 저버린 채 독자 출마해 노태우 후보에게 대권을 빼앗긴 생생한 역사를 되새기길 바란다. 두 후보의 대승적인 용단을 고대한다.
박 봉 현 <편집위원>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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