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 노린 후보는 철저히 솎아내야
한인사회-타커뮤니티-주류사회 가교
분야별 전문성에 참여의식 겸비해야
후보난립 우려 속 ‘옥석 가리기’과제
귀에 낯선 ‘주민의회’가 갑자기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3월 말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천타천 후보들의 공개·비공개 움직임이 민활하다. 이에 맞물려 “한인사회를 망신시킬 인물을 솎아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커뮤니티가 적임자를 고르는 ‘필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의 주민의회는 노인 돌보기에 발벗고 나섰다. 간호사가 자택을 방문해 보살피는 프로그램은 있지만 일단 집을 나서기만 하면 무방비 상태다. 노인들의 딱한 사정을 헤아린 주민의회는 포드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노인들이 바깥출입 시에도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약한 주민들의 고충을 먼저 찾아내 해결하도록 앞장서야 대의원 자격이 있는 것이다.
주민의회 멤버가 되려면 청소년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애리조나주 투산의 주민회의는 “서머 잡이 부족하다”는 청소년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에 도움을 요청했고, 타낸 지원금으로 환경을 개선하고 노약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에 청소년들이 동참하도록 했다. 청소년들이 돈도 벌고 커뮤니티의 소속감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을 쓴 것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동네 만들기도 대의원들의 임무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주민의회는 하루 4만 달러 상당의 마약이 거래되고 있어 환경을 해치고 범죄를 부르는 문제 가옥을 없앨 방도를 궁리했다. 40일간 캠페인 끝에 이 집은 헐렸고 가로등이 새로 설치돼 동네는 다시금 ‘살만한 곳’이 됐다.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는 인근 센트럴 할리웃 주민의회가 약 1년 반 동안 마약·매춘 추방 캠페인을 벌여 성과를 거둔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
대의원은 작아 보이는 일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워싱턴주 타코마 주민의회는 도심에 100 스퀘어피트 밖에 안 되는 작은 터를 쓸모 있게 바꾸어 놓았다. 잡초가 무성한 이 땅 밑에서 피살자 시신이 발견되면서 주민들이 지날 때마다 움찔해 하던 곳이었다. 주민의회는 이 땅이 동네 미관도 해치고 갱 집결지로 전락할 우려가 제기되자 땅 주인의 양해를 구해 연간 1달러 렌트로 이 땅을 어린이 놀이 공간으로 개조했다.
대의원에게는 정치 권력에 분연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드시티 웨스트 주민의회가 2002년 크렌셔 블러버드를 브래들리 블러버드로 개명하려던 네이트 홀든 시의원의 시도를 저지한 것이 한 예다. 정치인 옆에 붙어 이권을 챙기려는 생각이 손톱만치라도 있다면 조용히 출마 의도를 접어야 할 것이다.
한인타운에 학교가 줄이어 들어서고 한인들이 많이 하는 리커 등 업소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는 것을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지만, 주민의회를 통해 한인 피해 현황 등을 시정부에 전달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유도하는 것도 대의원들의 책무다. 우리의 입김이 없으면 그만큼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 있음이다.
주민의회의 일원으로 일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속출할 것이다. 시정부와 민간부문의 가교역할을 하다보면 전문성 부족을 절감할 때가 있고 시정부 관계자의 ‘고자세’에 분통이 터지기도 할 것이다. 주민의회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또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이익을 우선시 하다 보면 충돌도 불가피하다. 다들 생업에 바쁘다보면 각종 회의에 참석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영악한 정치인들에 의해 정치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통로인 주민의회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구다. 정치인들이 주민의회와 대립각을 세워 득이 될 게 없으니 사활이 걸린 사안이 아니면 주민의회의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할 것이다. 특히 비즈니스 라이센스, 개발권, 조건부 영업허가 등 이슈에서는 그러하다. 대의원이 되려면 자문기구인 주민의회가 파워를 분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주민의회가 무엇인지 통 모르고 대의원에 나서겠다면 장작불에 덤벼드는 부나방에 다름 아니다. 자신은 손가락질 당하고 커뮤니티에도 창피를 준다. 적지에서 매복을 준비하는 군인이 지형지물을 숙지하는 것처럼 대의원 후보는 주민의회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는 LA시내 110여 개 주민의회 중 하나로 지난해 8월5일 LA시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며 3월 말 선거에서 35석을 두고 경합을 벌인다. 멜로즈-버몬트-올림픽-웨스턴을 경계로 하는 이 주민의회는 대의원 가운데 12석을 관할 내 5개 소구역으로 나눠 거주민에게 할당했으며 한인에게는 2-3석을 배정했다. 또한 나머지 23석은 비즈니스 업주·협회관계자·부동산 소유자 등 9석, 비영리단체 관계자 9석, 16-18세 청소년 2석, 그리고 일반 대표 3석 등으로 배분된다.
또한 주민의회 대의원 당선자 중 득표수에 따라 상위 절반은 임기 2년, 하위 절반은 임기 1년으로 하며, 후보와 투표 자격이 체류신분과 무관하므로 16세 이상이면 누구든 자유로이 출마하거나 투표할 수 있다. 대의원이 되려면 이 정도 지식은 지녀야 한다.
한인사회에는 이번 선거와 관련, 후보 추천위원회가 결성돼 논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잡음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민의회 선거에서는 얼마든지 복수투표가 가능하므로 한인들이 우르르 출마한다고 해서 특정후보에 대한 몰표로 다른 한인후보들이 낙선할 것을 우려할 걱정할 없다. 다만 첫 실험무대에서 한인들이 주민의회를 장악해 좌지우지하거나 정치단체화 하는 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류사회와 타 커뮤니티에 준다면 장기적인 관점 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
주민의회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아니라 커뮤니티 간 힘 겨루기 마당이 돼선 곤란하다. 후보추천위는 이번 선거가 ‘우리만의 잔치’로 변질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긴 안목으로 추천작업에 임하길 기대한다. 아울러 현재 임시 대의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인들을 무조건 배제시킬 이유도 없다.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따져 옥석을 가려내면 된다.
추천위는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지역의 발전과 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 후보만을 엄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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