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사회부 부장대우
한인타운이 오는 3월31일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 대의원 선거 준비로 부산하다. 대의원 선거는 타운의 대소사를 논의해 시의회에 건의하는,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반상회 대표들을 뽑는 일이다. 얼핏보면 동네 모임 같지만 역할과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술 면허가 많으니 제한해 달라고 건의할 수 있고 교회의 신·증축을 막아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봄 주민의회 발족을 준비하던 임시 회의에서 타운에 사는 주민 몇 명이 한인 업소들의 이름을 들고 나와 문제가 많으니 술면허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더더욱 교회에 대해 부정적 발언을 하며 신·증축을 제한하자고도 했었다. 교회는 세금도 내지 않는데다가 교통 혼잡을 유발하니 줄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단순히 주장이려니 생각해서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다. 주민의회 회의에서 이를 안건으로 받아들여 시정부에 제출하면 시의원이나 정부가 주민들의 뜻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동네 사람들이 싫다는데 억지로 특정 업소나 지역을 봐 줄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주민의회의 역할중 하나도 지역 정치인들의 막강 권한을 견제하는 워치독 기능이기 때문이다.
주민의회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거주지역보다는 한인 경제 중심지로 더 빠르게 발전해 가는 한인타운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거가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유흥, 식당업소들이 많은 타운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만 독식하자는 식의 대응은 경계해야 한다. 어차피 타인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타인종들과의 대립관계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운내 단체들이 나름대로 후보도 추천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한인들만 무더기로 당선시키고 보자는 식의 대책은 피해야 할 것이다.
타운 주민의회 선거 대책을 위해 조직된 ‘코리아타운 주민의회 태스크포스’의 후보 추천위원회가 29일로 예정됐던 21명 한인 후보자 추천을 충분한 토의, 설명을 거친 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말 환영할 일이다. 타운 일각에서는 일방적인 후보 발표로 한인 대 한인, 한인 대 타인종과의 마찰이 생기지 않겠나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높았었다.
공청회나 설명회 한번 갖지 않은 채 단체별로 제각각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여론만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해관계에 따라 단체, 그룹이 뭉쳐 저마다 후보를 내세우고 타인종 유권자들은 아예 무시한 채 우리만의 선거에 나선다면 인종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었다.
한인사회가 공개토론에 인색하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타운의 대소사를 놓고 공청회가 열린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이번 주민의회 선거만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기를 바란다.
주민의회 발족에 참여해 한인들의 입지를 세우느라 애를 쓴 사람들도 있고 꾸준히 참석해 무언의 힘이 되어준 한인들도 있다. 또 발빠른 대응으로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인사회 중심단체들의 노력도 높이 살만 하다. 이들이 한데 모여 주민의회의 본질을 홍보하고 임무나 역할, 선거 방식 등을 알리는 설명회를 개최한 후 후보들을 위한 토론과 후원이 뒤따른다면 주인의식을 가진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타인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인타운의 믿음직한 대의원들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타운 주민의회 타인종 임시 대의원을 초청해 그들의 의견도 들어보는 기회가 마련되면 좋다.
여론을 모아 내친김에 타운 인접 6개 주민의회, 더 나아가서는 LA시내 110여개가 넘는 주민의회를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홍보하는 중심체를 구성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LA카운티에도 유사 기능의 주민의회가 운영되고 있으니 이에 대한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주민의회 대의원을 주요 단체장 정도로 착각하는 한인들이 많은 것 같아 우려된다. 주민의회 대의원은 진정한 봉사직이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빽줄’이 생겨 타운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운내 한인과 타인종 대표들이 골고루 당선돼 당면 현안에 머리를 맞대고 공동 토론하는 성숙된 주민의회가 이룩되길 바란다.
한인들이 연대해 무더기로 당선시켜 주민의회를 완전 장악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면 내년 대의원 선거에는 타인종들의 감정적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결국 타인종 대 한인의 대립 양상이 이어지고 이틈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고 달려드는 약삭빠른 한인들도 나올 수 있다.
굵직한 과제를 앞에 둔 한인사회의 성숙한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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