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고 며칠동안 뿌옇게 흐린 날씨더니 오늘은 산뜻하게 햇볕이 ‘쨍’ 밝음에 눈부시다. 추위에 떨던 검푸른 녹색의 잔디들이 푸근하게 내린 함박눈 솜이불을 덮고 깊이 잠들었나 푸르름이 보이지 않는다.
두 딸 시집 식구들이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꾸러미들을 두 개의 큰 가방에 포개 넣느라 애를 먹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작은 딸네 나들이가 분명 손자 손녀를 위한 산타클로스 역할까지 하게 되니 마음 뿌듯해진다.
공항으로 달려간다. 길가의 나뭇가지에 간신히 걸려있는 눈송이들이 햇볕에 못이겨 뚝뚝 눈물을 보여준다.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 게이트로 나간다. 붐비는 승객들이 저마다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양손에 들리어 바쁘게 움직인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곧바로 상공으로 치솟는다. 귀에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하다. 55분의 비행 끝에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 작은딸의 마중을 받으며 기쁨의 포옹과 갓 태어난 손자 녀석을 몇 분 후면 볼 수 있으니 마음 설렌다. 귀엽게 생긴 손자녀석은 양볼에 작은 사과를 물고 있는 듯 볼룩하며 쌕쌕 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작은딸은 첫 아이 때는 그렇게 예민하여 스트레스로 짜증을 많이 내더니 경험에서 얻은 지혜인지 제법 아기를 익숙하게 잘 다르며 얼마나 너그러운지 나 혼자 몰래 웃곤 한다. 1차로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고 떠난 자리에 2차로 친정엄마가 차지했으니 수월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샤핑도 가고 사위가 베이비싯 하고 딸과 둘이만 팝콘을 먹어가며 ‘마지막 사무라이’ 영화관람도 즐겼다. 21개월의 손녀딸과 소꿉장난 친구가 되어 깔깔대던 2주가 훌쩍 지나 이곳 미시간에 올 때같이 선물들을 가방에 꾹꾹 눌러 넣느라 분주했다.
12월의 나들이는 오가는 선물 배달원 노릇에 후해야 한다나. 작별 인사하는 작은딸은 눈물을 글썽거린다. 늦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니 남편이 다가와 웃는다. 반기는 가족이 있음에 행복에 마냥 젖게 한다. 이틀이 지나 우린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큰딸 시부모 사돈 내외와 함께 리치몬드 큰딸 네로 달린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선물을 풀며 큰딸이 준비한 맛있는 식단을 대하며 오가는 얘기에 손녀딸이 한몫한다. 유행하는 감기로 21개월된 손자녀석이 열이 있어 내품에 안겨 큰 눈만 껌뻑이며 늘어져 있다. 손자 녀석을 끔찍이나 좋아하는 할아버지인 남편이 “당신은 여기 남아있구려”한다. 손자를 돌보라는 얘기다. 남편과 사돈부부는 떠나고 난 아이들 돋보기에 정성을 쏟는다. 할머니 손이 약손인가 며칠이 지나니 깨끗하게 나았다. 방안에만 있으니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것 같아 하루는 ‘churke cheese’로 하루는 ‘어린이 박물관’으로 나들이 갔다. 갖가지 놀이기구에 정신없이 뛰놀며 앞치마를 입고 손에 갖가지 페인트를 묻혀 얼굴에도 칠하고 도화지에도 마구 칠하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마침 2003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망년날이라 아이들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인 퍼레이드 쇼가 있어 모든 어린 아이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쿵짝 쿵짝 밴드에 맞추어 길게 길게 줄을 서서 손짓 발짓을 흉내내며 춤추는 대열에 끼어있는 손자 손녀가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사위가 선심을 쓴다. 요즘 인기있는 ‘제왕의 반지’를 딸과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하며 즐기란다. 우린 극장으로 달려간다. 화면마다 웅장한 장면이 컴퓨터를 이용했다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화점에 가서 나에게 너무 튀는 옷이라는데도 큰딸은 굳이 젊게 입어야 한다며 가죽코트를 안겨준다. 내일이면 제자리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먹어주고 활기차게 뛰어노니 기쁘다. 할아버지인 남편이 3주가 넘게 혼자 지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손자 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태져서 12월의 나들이는 더욱더 즐겁고 보람된 나들이였기에 남편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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