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정당 중 전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당은 어느 나라의 어느 당일까. 정답은 미국의 민주당이다. 미국 민주당의 기원은 1796년으로 잡는다. ‘국부’로 추앙 받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여러 사람의 만류를 거부하고 3선을 포기한다. 평생 왕 노릇을 해 먹을 수 있는데 자진해서 권력을 반납하고 평민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영국 왕 조지 3세는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워싱턴이 출마를 포기하자 그 후임을 놓고 부통령이었던 애덤스와 국무장관이었던 제퍼슨 사이에 경합이 벌어졌다. 이 때 제퍼슨을 지지한 집단이 현 민주당의 시작이다. 그 때 애덤스를 지지했던 친 영국 성향의 연방당은 1812년 영국과 전쟁이 벌어지면서 몰락, 자취를 감췄다.
제퍼슨을 지지했던 정당의 원래 이름은 아이러니컬하게 공화당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민주-공화당으로 바뀌었다 다시 민주당이 됐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다. 독립선언서를 통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기염을 통했던 제퍼슨의 정당이 나중에는 노예제를 합리화하는데 앞장섰다.
민주당의 맞수이자 올해로 창당 150주년을 맞는 공화당이 태어나게 된 것은 민주당의 친 노예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힙을 합칠 필요성을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1854년 노예제에 반대하는 일부 민주당원과 자유토지당원, 위그당원들이 미시건 잭슨에 한데 모여 창당 대회를 열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제퍼슨의 정신을 이어 받자는 취지로 이름도 민주당의 원 이름인 공화당을 선택했다. 공화당은 창당 후 불과 6년 만에 링컨을 통해 집권에 성공하고 그 후 남북전쟁에서 이겨 대공황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미 정계를 주름 잡았다.
그러나 한 때 ‘링컨의 당’이던 공화당은 그 후 흑인을 비롯한 소수계 권익 옹호에 등을 돌려 도덕적 고지를 잃고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다. 한 때는 노예제 옹호에 기치를 높이 들었던 민주당이 60년대 민권 운동을 주도한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같은 당의 정책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180도 바뀐 것은 사회 문제만이 아니다. 중소 자영농을 지지기반으로 한 민주당은 원래 작은 정부와 자유무역, 주 정부의 권리를 부르짖던 정당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정반대로 공화당이 이를 신성불가침의 신조인양 떠받들고 있다. 100년 전 민주당의 정강 정책을 보면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것을 빼어 박은 듯 닮아 있다.
뉴딜이래 ‘큰 정부’를 통한 소득 재분배와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증세와 사회 복지 혜택 확충을 골자로 해오던 민주당의 경제 정책에 근본적인 수술을 가한 사람은 민주당원으로는 루즈벨트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이다. 스스로를 ‘신 민주당원’이라고 부른 클린턴은 민주당 주도의 의회를 설득, 북미 자유 무역협정을 비준토록 했으며 웰페어 수혜 자격을 평생 5년으로 제한하는 획기적인 사회 복지 개혁안에 서명했다. 국정 연설에서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사람도 그다.
그가 이토록 변신에 힘쓴 것은 카터를 제외하고는 존슨이래 한번도 백악관을 차지해보지 못한 민주당 내부에서 구태의연한 정책으로는 다시 집권할 수 없다는 뼈아픈 반성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재임한 8년 동안 미국이 호경기를 누린 것은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온건한 경제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지금 민주당 경선에 나선 대선 주자 중 이런 클린턴의 노선에 가장 반기를 든 사람은 한 때 당내 지명이 기정사실화 된 것처럼 떠들던 하워드 딘이다. 그는 클린턴 지지자들을 “민주당 내 공화당원”이라며 “우리는 이들도 감싸안아야 한다’고 거만을 떨었다. 그러던 그가 당내 경선의 첫 시험대인 아이오와에서 1등 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음 주 있을 뉴햄프셔 예선에서도 참패한다면 중도탈락하지 말란 법도 없게 생겼다.
딘을 제외한 나머지 대선 주자 면면을 살펴봐도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뵈는 리버먼을 제외하고는 경제에 관한 한 클린턴 절반 정도의 이해가 있는 인물도 없다. 경제 정책이 후보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것만은 분명하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어째서 수십 년째 클린턴을 빼놓고 민주당원은 백악관 근처에 가보지 못했거나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나고 말았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