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이 지나고 동포사회의 연륜이 쌓이면서 이민 1세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가고 있다. 한인사회의 터줏대감이라 할 올드 타이머들이 하나 둘 부음을 남기며 사라져 가기 시작한 것이 10여 년 전부터의 일이 아닌가 한다. 5~60년대 미주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프로페셔널과 유학생들, 그리고 70년대 이후 이민 사회를 일군 주역들 중 이미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앞날보다는 지나온 날들을 반추하며 나날을 보내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난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 자서전 혹은 회고록 류의 책 출판을 준비하거나 본인이 집필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주변에서 아는 이 만도 5~6명이 되니 실제는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물론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이면 회고록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회고록에 대한 이미지와 현재 한인사회에서 거론되는 회고록들과는 약간 거리감과 이질감이 있음을 느낀다. 우리 뇌리 속의 회고록은 명망가나 유명인사들의 추억담 혹은 경험담이었음에 반해 이민사회 속의 회고록은 보통 사람들이 살아온 평범한 일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보통 이민자들이 왜 자신들의 자질구레한 일상들을 구태여 기록으로까지 남기려 할까. 나름대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통으로 보일 지라도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하여서일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동포사회의 회고록 만들기 붐의 공통분모는 우리 모두 이민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일 게다. 이민자란 온갖 세상살이의 쓰라리고 고된 일을 맛 본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민자들의 생활경험은 모두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소재감이며 역사의 민주화를 이루는 기본이라 할 수 있겠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고 선영이 있는 정든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이민 보따리를 꾸릴 때의 심정은 갖가지였을 것이나 극소수를 제외하곤 보다 나은 삶(better life) 의 추구였다고 본다. 이민 희망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란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우리의 경우만 아니고 미국에 이민 오는 모든 나라의 사람에게도 공통되는 이민 동기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것도 주로 경제적 성공을 이름하는 것 아닌가. 모국에서의 모든 일을 무로 돌리고 미국의 바닥 선에서 새 출발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것이 이민자의 현실이다. 출발이 이렇다고 해서 이민일생이 다 그렇겠는가. 거의 맨손으로 시작한 한인들의 지난 3~40년간의 역정은 문자 그대로 우리들의 삶의 역사다.
그 동안 이들은 살아 남기 위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하기가 일쑤였고 세월이 가면서 집도 장만하고 어느덧 아이들도 다 자라 집을 떠났다. 젊었을 적엔 그렇게도 매력적이었던 출세, 명예, 치부 등이 한낱 부질없는 신기루로 보인다. 어떤 일이 나를 행복하게 했던가. 무슨 일이 나를 기쁘게 할 것인가. 이제야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지혜에 눈이 떠졌나 하고 느긋해 할 즈음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된다. 저기서 죽음의 검은 사신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들의 가족들에 대한, 한인사회에 대한, 미국사회에 대한 추억과 하소연이 회고록의 형태를 빌어 준비되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렇다면 유명인사가 아니더라도 촌부의 자화상이면 어떠랴. 이들에겐 고상한 철학이나 역사의식 같은 것은 거추장스런 사치품일 뿐이다. 대신 이들의 회고록에는 낯선 남의 땅에 와서 자식을 기르고 살아남기 위한 진솔한 생활 및 신앙기록과 한국인의 정이 각인돼 있다. 이들은 또 교외에 2카 거라지와 4베드룸을 갖춘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자녀들의 대학졸업 이란 소위 코리언 아메리칸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 이들의 회고록은 가족들과 한인사회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며 특히 가족들에게는 어느 유산보다도 중요한 가보로 대대로 전수될 것이다. 이민 1세로서 후대에 이보다 더 귀중한 대물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다익선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