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항상 불길하기 마련이다. 서울에서 한 학기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1월 5일 새벽 6시에 LA에서온 전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98세이신 나의 노모께서 위독하시다는 소식이었다.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내쉬빌을 거쳐 LA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경, 템플 커뮤니티 병원을 간신히 찾아 간 때는 밤 10시쯤이었다. 중환자실의 침대 하나에 누워 계신 어머님은 이미 인사불성이셔서 “어머니, 선우가 왔어요” “어머님, 기주 엄마가 왔어요” 하는 우리 둘의 울부짖는 소리에도 전혀 무반응이셨을 뿐이셨다. 병원에서 우리를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간 주치의의 전화는 낙망적이었다. 이삼일 전부터 심장마비가 두 번 있었는 데다가 모든 기관이 기능을 멈춘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부착되셔서 간신히 숨만 쉬시는 상태임으로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까 직계가족으로서 내일쯤 호흡기를 거두는 결정을 내려달라는 보고였다.
이미 어머님의 수족은 차가울 따름이었으며 온기가 느껴지는 곳이라고는 팔뚝 정도였지만 의사의 말로는 그런 상태로도 며칠을 갈 수 있다는 말이었기에 마음이 무거울 대로 무거운 채 어머님 아파트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둥 마는 둥 뒤척대기를 한지 30분도 못 되어 또 전화벨이 울렸다. 사경을 헤매신다는 연락이었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우리가 도착하기 5분전인 6일 새벽 12시20분에 숨을 거두셨다는 간호사의 사무적인, 그러면서도 동정적 언사였다.
오호 통재라. 단장의 설움이란 바로 친상을 당한 사람의 심경이다. 더구나 죄인 중의 죄인이요, 불효자 중 불효자였던 나의 참담한 마음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어머님의 얼굴과 손을 만지면서 울부짖어도 달래질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 성경 디모데 전서 5장12절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는 원칙에 의하면 20년이 넘게 LA에서 혼자 생활하시도록 방치한 나의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효였다.
더욱더 망극한 회한으로 나를 처절하게 만드는 사실은 평소에는 건강하셨지만 약 10개월 전부터 병원출입을 거쳐 양로원과 아파트 사이를 왔다 갔다 하시는 상태라서 이 곳을 정리하고 빨리 LA로 가서 손수 모시고 수발은 못 들 망정 매일같이 찾아 뵙고 위로를 해드리면 백세는 무난히 넘기시겠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었다는 점이다. 사실 매주 마다 전화 드리는 중 항상 서울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면 1월 중 찾아 뵙겠다는 약속을 드려왔었을 뿐 아니라 1월25일부터 1월말까지 LA에 다녀올 비행기 표도 예약되어 있는 상태였었다. 우선 아내가 1월28일 캘리포니아 주 부동산 브로커 시험에 응시하고 나는 7월에 있을 변호사 시험에 응시해서 캘리포니아 주로 이사가는 계획을 서서히 구체화시키고 있었던 중 상을 당했으니 진작 어머님 곁으로 이사가는 일을 결행하지 못한 게 후회막급일 뿐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인 우리 부부는 주기도문에 따라 하나님의 왕국이 지상에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따라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지상 낙원으로 부활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요한복음 5:28, 29)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억밖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런 지식이나 의식도 없이 잠자는 상태라서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해서 부화시키시는 것뿐임을 확신한다.(전도서 9:5, 10; 사도행전 24:15)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부활만 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씻기시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는 약속은 죽음 가운데서 사랑하는 가족 성원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계시록 21;4)
그러나 그와 같은 믿음이 있어도 친척들과 전화할 때마다, 그리고 어머님이 쓰시던 유품을 볼 적마다 눈물이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정 말기와 해방 전후의 소용돌이, 그리고 6.25 사변을 거친 나의 성장기에 얼마나 어머님이 갖가지 고생을 하시면서 우리 사남매를 키우셨는가를 회상하면 더욱 그렇다. 나의 불효에도 불구하고 나를 극진히 사랑하셨던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머님을 인공호흡기에서 떼어놓도록 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마지막 불효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미리 숨을 거두심으로 끝까지 자식을 자기보다 먼저 생각하신 배려를 하신 것 같아서 나의 슬픔의 오열은 더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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