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지역에 3천명 이상 추산
K모씨(36세) 가족의 크리스마스 식탁은 단촐했다. 초등학생 아이 둘과 그. 아이들은 왁자지껄했지만 남편없는 김씨의 만찬은 썰렁했다.
미국생활 1년여. 남편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송금하고 엄마인 김씨는 자녀들을 양육하며 미국에서 공부시키는 전형적인 기러기 가족이다.
몇해 전부터 김씨 같은 교육이민 가족들이 워싱턴 한인사회에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이민 유형으로 자리잡은 현대판 맹모삼천지교 행렬이 명문 학군으로 소문난 워싱턴을 향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한인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독자적 생활방식을 구축하고 있는 교육이민 가족의 실태를 진단한다.
■기러기 가족 얼마나 되나
워싱턴의 기러기 가족들은 얼마나 될까.
공식통계는 없어나 교육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들 숫자는 약 3-5천명으로 추산된다.
기러기 가족들이 워싱턴에 급증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 한국에 몰아닥친 외환위기가 회복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으로부터 전입학생 수는 매년 3백명-6백명선. 지난해는 총 687명의 전입생중 미국내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을 제외한 약 4백여명이 한국에서 들어온 학생들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유학생 감시시스템(SEVIS)의 발동등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예년보다 10-20%가 줄어든 수치.
2001년은 타주 및 한국 전입생이 800명으로 이중 70%인 5백명 정도가 한국에서 온 초중고생으로 분석된다.
훼어팩스 카운티는 한국으로부터의 전입생이 늘자 중앙 학생 등록처에 2001년부터 한국인 풀타임 직원을 채용하기도.
메릴랜드의 몽고메리 카운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카운티내 공립학교에 전입 오는 한국 학생 수는 연 2-4백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에 앞서 학생 등록처에는 이들 전입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 양대 카운티의 공립학교 전입생 숫자를 종합하면 워싱턴 지역의 경우 연 5백-1천명 규모의 학생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밖에도 친지집에 거주하거나 입양 등의 형태로 공부하는 조기유학생과 기숙사에 기거하며 사립학교에 다니는 조기유학생들을 합치면 한국에서 건너온 학생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주미대사관 교육관실은 “조기유학생이나 기러기 가족들은 철저하게 개인 위주로 움직여 파악이 안된다”며 “학생비자 발급통계로 전체적인 상황만 짐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의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 말 미국 초중고 유학생은 약 5천4백명. 지난해의 경우 3배가 넘는 약 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나
통상 기러기 가족들은 엄마가 학교에 등록, 학생비자로 미국에 입국하면서 자녀들을 동반한다. 부모중 한 사람이 학생비자를 소지하면 그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다.
기러기 가족들은 학군 우선주의 원칙에 철저하다. 따라서 주거지도 랭글리나 맥클린 하이스쿨 같은 명문 공립학교가 밀집한 버지니아의 맥클린을 선호한다.
그러나 너무 높은 주택가격때문에 구입이 쉽지 않은데다 2베드룸 아파트의 렌트비도 1천7백달러를 넘는 관계로 일반 중산층 가정들은 좀더 외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웃슨, 웨스트 스프링필드, 옥턴, 센터빌, 레이크 브래덕, 로빈슨 하이스쿨등 비교적 괜찮은 중고교가 몰려 있는 훼어팩스 카운티와 몽고메리 카운티가 일반적으로 인기이며 최근에는 신흥도시 센터빌이 각광받고 있다.
3년전 센터빌로 이주해온 L모씨는 “공립학교에 보내려면 이왕이면 교육 환경을 최우선시해 거주지를 선택한다”며 “요즘 웬만한 학교에서는 한 학년당 기러기 학생들 수가 몇 명은 된다”고 실정을 전했다.
주거형태는 아파트 렌트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때로는 여유가 있거나 장기 거주시 타운 홈을 구입하기도 한다.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기러기 가족의 경우 한국에서 중산층이 많아 경제적으로 두 집 살림하기에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다”라며 “월 1천5백달러 내외의 2베드룸 아파트가 선호되고 있다”고 말한다.
기러기 가족의 주 연령층은 초중고생 자녀 2명을 둔 30대말-40대 주부.
기러기 가족들은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는 걸 싫어한다. 대부분 한인사회와 담을 쌓고 지낸다. 집안에 손님을 초청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쇼핑과 외식, 일요일 교회 나들이가 바깥 활동 사이클의 전부로 그들만의 격리된 생활을 유지한다.
한 어머니는 “남편이 없으니 아무래도 손님들을 집에 불러들이거나 남들과 교유하는 걸 기피하게 된다”며 아버지의 부재라는 가족의 형태가 부자연스런 생활패턴을 낳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생활비는 얼마나
중고생 아들 둘을 데리고 3년전 입국했다는 P모씨 가족의 월 지출은 4천달러 수준. 아파트 렌트비 월 1천4백달러에 부식비, 자동차 유지비, 아이들 학원비, 교육비, 통신비, 외식비등 생활비로 한달에 2천달러 가량을 쓴다. 여기다 P씨가 유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I-20 Form을 발행해줄 수 있는 학교를 다니는데 일년에 6천달러가 든다. 이를 합하면 박씨 가족의 일년 체류비는 4만달러가 훨씬 넘는다.
그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여유가 좀 있었는데 여기서는 빡빡하다”며 “가급적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부유층이 아니면 만만찮은 유학 경비는 전적으로 한국의 아버지 부담. 따라서 일부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자투리 시간에 돈벌이에 나서려고 시도해보지만 체류신분이 학생비자라 취업은 쉽지 않다.
■그들만의 좌절
기러기 가족이 겪는 가장 큰 고충은 역시 가족들이 생이별을 한 채 지내야 한다는 점. 아버지는 혼자의 외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한편 한국에서 뼈빠지게 일해 송금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통째 안고 있다. 반면 자녀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들도 말못할 고통을 안고 있다.
어머니들의 대부분은 처음 미국에 올 때는‘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나도 영어 좀 배우고, 또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자’는 꿈을 안고 오지만 실상은 만족보다는 좌절의 연속이다.
우선 비록 신분은 유학생이나 자신에 대한 공부와 투자보다는 하루종일 라이드등 아이들 치닥거리로 소일해야한다.
남편의 부재가 던져주는 스트레스도 크다. 늘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하던 걸 이제는 혼자 결정해야 하면서 골치가 아프다 한다.
또, 미국 교육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아이들 지도에 곧 한계를 느낀다는 점도 부담이다.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미국생활에 쉽게 적응하면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다. 엄마의 역할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K씨는 “미국에 온 이후 한국에서보다 아이와 더 멀어진 느낌”이라며 “내가 왜 이곳에 왔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고 하소연한다.
일부 어머니들은 무료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탈선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시키위해서 감수해야 할 교육비가 한두 가지가 아닌 셈이다.
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의 경 듀갠씨는 “한창 나이의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도 문제지만 인위적인 가족해체에 따른 아버지의 공백이 사춘기 아이들에 주는 공허감도 무시할 수 없다”며“아이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임을 명심해야한다”고 충고한다.
반쪽 교육으로는 영어 습득 이외의 교육적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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