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973년 92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은 파블로 피카소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들고 설명하기 어려운 형상물 앞에선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을 떠올린다. 화가들 사이에서도 그가 입체주의와 추상주의의 대명사처럼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구상의 길을 걷던 화가들의 비난을 받기도 일쑤였다. 한국의 오지호 화백의 독설은 유명하거니와 필자의 학창시절 “입체파와 추상이 그림이냐?”는 일갈을 감추지 못하시던 교수님의 단호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하긴 그렇다. 자신의 길(구상)에 평생을 걸고 황혼을 맞던 노장 화가들에게 그건 가짜로도, 농담으로도, 불성실로도, 장난으로도, 기만으로도 보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그 때도 이해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런가 하면 구상화가로 지금도 생존하신 고등학교 때의 미술선생님은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던 것도 기억한다.
지금 워싱턴 한 복판 내셔날 갤러리에서는 10월 그의 생일이 든 달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그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피카소의 예술세계의 다양했던 변신 뒤에는 늘 새로운 여인이 있었다. 첫 번째 여인이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모델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가난했던 시대의 페르낭드 올리비에, 마르셀 옴베르(에바), 올가 코홀로바, 마리 테레즈 발터, 도라마르, 프랑수아즈 질로, 자크린 로크 등, 이들 여인들은 그의 예술의 동기와 에너지와 전기(轉機)가 되어주었다. 피카소는 우리들과 다름없는 결점 많은 사람이었다. 독설에 잔소리꾼, 돈에도 관심이 많았고, 눈 딱 감고 거짓말도 할 줄 알았으며, 필요하면 친구도 배반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시인 아포리네일을 배반한 일화는 평생을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한 일이었다. 그가 자크린 로크와 결혼한 것은 그의 나이 73세 때였다. 타고난 건강으로 그 후 20년을 더 살았던 것은 자크린을 위해선 다행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 여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도.
그에게 왜 그렇게 많은 여인들이 필요했을까. 끝없이 변해야 몰락을 면할 수 있는 게 세상 만물의 이치임에 예술은 더욱 그러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남자들을 바람둥이 또는 플레이보이라고 하면서도 예술인들에게는 너그러운 것일까? 설국으로 노벨상을 탔던 일본의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왜 자살을 했을까? 확실한 유서나 단서가 없어서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작품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는 게 문인들의 설명이지만 그보다는 숨은 이야기에 더 관심을 두는 이들도 있다. 그가 어느 꽃집에서 일하던 소녀에게 빠진 나머지 월급을 많이 지급하겠다는 조건으로 집에 데려다 놓고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도 자신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훑어가는 그의 시선이 견딜 수없이 부담스러웠던 소녀가 집을 뛰쳐나가자 이에 실망하고 비관한 나머지 자살의 길을 택했다는 얘기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미국의 헤밍웨이, 그의 자살에도 많은 얘기들이 있다. “집안의 유전이다. 가족 중에 자살자의 수가 많다”고 하기도 한다. 가와바다 처럼 노벨상 수상작가로서의 부진이 이유라고 하기도 한다. 헤밍웨이에게도 그런 뒷이야기가 있다.
여행길에서 만났던 이태리 귀족 가문의 소녀, 18세의 아드리아나에게 빠진 나머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대신 아내를 내쫓으려 했었다. 그러나 젊은 청년과 사랑에 빠진 아드리아나가 그를 떠나자 헤밍웨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의 자살은 그 직후의 일이다. 열아홉 살의 올리케에게 결혼을 신청했던 괴에테, 그의 나이 75세 때였다. 한국의 김흥수 화백의 경우도 비슷하다.
하느님은 남자들을 왜 이렇게 만드셨을까? 천지창조 후에 텅 빈 세상을 빨리 채우고 싶어서 그러셨을까? 천재들에게는 좀 헐렁한 나사가 있게 마련인가? 헐렁한 나사는 문제를 만든다. 그러기에 세상에 천재가 많지 않은 게 다행이다. 요즈음 지면마다 대서특필 되어있는 모 여가수의 수기 출판물 속에 돈 버는데 천재였던 남자의 헐렁한 나사가 또 문제되고 있기에 여자로서 해 본 소리다.
<시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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