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부대가 4월10일 오전 10시 정상등정대의 지원을 위해 제3 캠프를 출발하기 전인 9시까지 필자는 다시 3캠프로 올라가기 위해 지원대 회의를 끝내고 4월9일 2 캠프에 도착했다.
밤은 깊어 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불길한 마음에 사로 잡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계속 몰아치는 폭풍설만이 그 무엇을 예고나 하듯 미친 듯이 천막을 후려치고 있었다.
4월10일 간밤에 눈에 묻혀 간신히 기어 나와 살아났다. 밤새 쏟아진 눈이 1m가 넘었는데도 계속 내려 새벽에 3 캠프로 올라가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하루 종일 쏟아진 눈은 2m가 넘었다. 대원들은 눈을 치우느라 지치고 말았다. 제 3캠프와는 종일 통신이 두절돼 기류가 나뿐 줄만 알았다(그러나 이날 새벽 3캠프는 이미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4월11일 사람들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3캠프 대원들이 다 죽었다는 소리가 들렸다.깜짝 놀라 나가보니 3캠프에 있던 2명의 쉘퍼가 와서 함께 울고 있었다.
4월10일 새벽 2시께 천막의 눈을 치우다가 쾅하는 소리와 함께 100 여m나 밀렸으나 정신을 차려 다시 기어올라가 보니 제 3캠프 자리는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대원들을 찾으려고 했으나 몰아치는 폭풍설과 눈사태로 수색을 포기하고 2캠프로 철수했다는 얘기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16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이 끔찍한 보고에 필자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으나 엄청난 불행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에 이성을 되찾고 식당으로 전원 집합시켜 철수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모든 지휘는 서충길 대원이 할테니 그의 명령에 절대복종토록 지시했다. 최석모 대원은 간밤에 눈을 치우다가 허리를 다쳐 걸을 수가 없어 다음날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한 명은 철수부대를 인솔하고 다른 한 명은 필자를 보호하기 위해 꾸민 거짓말이었다).
필자는 너무도 맑게 개인 날씨가 원망스러웠고 고히 잠든 깊은 밤에 캠프를 기습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나스루에 대한 증오감에 온몸을 떨었다. 필자는 돌아설 수가 없었다.
내 아우 김기섭 대원에 이어 이번 참사를 당한 16명까지 모두 17명의 시신을 두고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성공을 기원했던 국민들과 산악인들을 무슨 면목으로 대할 것이며 막내까지 아우 셋을 다 묻어 놓고 어떻게 부모님을 볼 수 있겠는가.
’부하대원들과 함께 묻혀야 한다. 아우들이 간 곳에 형도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등반준비를 마친 후 천막에서 내려와 부하들이 당한 제 3캠프를 향해 떠나려고 했다.그 때 최석모 대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비키라고 픽켈로 밀었더니 그는 주저앉으며 필자의 두 다리를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필자도 주저앉아 한참을 울고 있는데 갑자기 무전기에서 사람이 보인다는 서충길 대원의 긴박하고도 흥분된 보고가 연달아 들려왔다. 그때 발 아래
로 보이는 먼 설원에 조그만 점이 보이더니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번갈아 가며 구조신호를 보내는 게 아닌가.
눈사태 난 곳이 해발 6,500m이고 사람이 발견된 곳이 5,400m, 그렇다면
1,100m 아래로 추락했다는 소리인데 도대체 그 무서운 폭풍설과 혹한 속에서 어떻게 33시간을 버티고 살아났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나 흥분한 필자는 한 손의 무전기로 철수부대에게 구조지시를 하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망원경으로 사람의 물체를 계속 주지하고 이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죽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낙심, 눈 위에 주저앉았는데 한참 후에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다는 대원들의 말에 급히 바라보니 바늘 같은 것이 조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너무도 기뻤다.
구조대가 그를 빨리 구해야 할터인데 철수하던 구조대가 그곳까지 도착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어떻게 하든 꼭 살려야 하는데.. 제발 죽지 말아야 하는데... ‘.
필자는 그 때처럼 조바심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생존자가 누구이며 얼마나 다쳤을 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16명 중 혼자만 살아난 저 불사조는 과연 누구일까. 우리 대원일까. 혹은 쉘퍼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시나 두 아우 중 한 명은 아닐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