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2003년 9/10월 호의 ‘유엔을 다시 생각하자’라는 글에서 부시 현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글에서 유엔은 미 국방부가 32시간마다 지출하는 금액과 비슷한 12억5,000만달러의 연간 예산으로 에이즈, 가난, 사스, 핵 확산 그리고 국제 범죄에 대처하고 있고… 유엔의 예산은 본부와 5개 지역본부 예산에다 29개 산하기구와 기금을 모두 합쳐도 뉴욕시 예산의 4분의1밖에 안되며… 유엔 직원은 5만여명으로 이는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과 같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의 유엔 상임대표를 지냈던 올브라이트의 이같은 지적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이 이라크 문제에 대처하지 않을 경우 부적절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한 ‘유엔무용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의 말은, 미국에 비교할 때 예산과 인력이 ‘코끼리 비스켓’에 불과한 데도 유엔은 세계를 위한 자신의 평화적, 도덕적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이 세계 속에서 행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비판인 동시에 그런 유엔을 ‘의미 없는 조직’으로 매도한 부시와 그의 외교팀은 도대체 어떤 가치관과 외교 원칙을 가지고 있느냐를 질문한 것이다.
올브라이트는 또한 행정부의 매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전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비난했지만 종전 후엔 이라크 석유를 팔 권리를 승인해 달라며 안보리를 다시 찾지 않았느냐며 원칙 없이 근시안적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부시 외교팀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매파의 유엔 무용론은 세계인 대부분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편협하고 자기만족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결론적인 일침을 가했다.
난장판인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비되는 올브라이트의 ‘정연한’ 비판을 보면서 무엇보다 부러운 마음이 앞섰다. 우리의 비판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첫째, 비판은 촌철살인이어야 한다.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설명하는 것이라야 한다. 네가 하는 것은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라든지 이 정부가 하는 일은 도대체 어느 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라는 식의 말들은 잘못된 것을 시정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주절거림’에 불과하다.
둘째, 비판은 명백한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 비판은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나 남에게 들은 얘기를 무절제하게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누가 들어도 인정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증거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비판이란 결국 국민을 설득해서 방향을 바로 잡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들었을 때 정말 그렇구나라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명백히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비판은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에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현 정책이 기반을 두고 있는 원칙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대안적 원칙을,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보다 적절한 과정을, 그리고 구체적인 시행에 문제가 있다면 세부적 내용이 담긴 대안적 시행 안을 제시하고서야 유익한 비판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올브라이트의 비판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해치자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이상과 이익을 보다 잘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목표, 과정, 방법이 아닌 새로운 그것들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정치에서 보는 비판의 대부분이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전제에도 어긋나지만, 그 비판이 국가 이익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정치 선진국들에서 언론들은 자국 정치를 정말 매섭게 비판한다. 그러나, 언론의 거의 무한정한 자유에도 불구하고 자국 이익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할 경우 언론조차도 자제한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비판의 근원지로 정치인, 언론, 관료, 지식인, 시민단체, 기업과 노조의 이익집단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모두 자신들의 비판이 생산적 비판이 되도록 애를 써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이지 싶다.
조경근/스탠포드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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