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미국에서 ‘Made in Korea’ 승용차를 마주했던 반가움과 자랑스러움은 아직도 올드타이머들의 기억 한 편에 자리잡고 있다. ‘엑셀’이라는 소형 세단 하나만을 달랑 갖고 지난 86년 미 시장을 노크했던 현대는 어느 새 자동차 전시장인 이 곳에서 가장 주목 받는 업체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 한동안의 침체를 딛고 올해 40만대 판매를 눈앞에 둔 현대차 미주 판매법인 현대모터아메리카(HMA)의 어제와 오늘, 2004년 새 모델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해광 기자>
■올해 40만대 장벽 돌파
현대차가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한 때는 지난 85년. 철저한 시장조사와 독특한 판매망을 구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췄던 현대는 86년 소형차 엑셀을 미 시장에 선보였다. 때마침 일본차들의 대미수출이 자율규제와 엔고 현상으로 고전하는 등 시장 상황도 유리,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엑셀 하나만으로 86년 한 해동안 당초목표 10만대에 두 배 가까운 17만대를 판매했으며 87-88년에는 각각 26만대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품질과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면서 오히려 ‘고장 많은 싸구려 한국차’라는 불명예만 안고 말았다. 이후 현대의 슬럼프는 한 동안 계속, 98년까지 10년간 판매량은 연 10만 대 안팎으로 주저앉았다.
현대차가 다시 소비자들에게 다시 어필한 것은 품질과 디자인 개선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역시 ‘10년/10만 마일 워런티’다. 98년 첫 선을 보인 ‘10년/10만 마일 워런티’는 업계에도 빅 뉴스였다. 경쟁업체들은 그렇게 장기간 워런티를 제공하다가는 수익만 갉아먹게 될 것’이라며 평가절하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호응은 기대이상이었으며 여기에 힘입은 현대는 2000년부터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고 판매량도 함께 치솟았다. 98년 9만여대에 불과하던 판매량은 2000년 20만대, 2001년에는 30만대 벽을 가뿐히 넘어섰으며 올해는 40만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은 98년에 비해 4배 이상 치솟은 셈이다. ‘빅3’ 등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대약진이라고 부를 만 하다. 판매량에서 마즈다와 미쓰비시를 제쳤으며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인 GM도 ‘경계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시장 점유율도 해마다 늘어 지난해는 2.4%를 기록하고 있다.
■파격 워런티, 성장 요인
현대가 내세웠던 장기 워런티는 이제 업계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2000년부터 기아도 같은 조건을 내세웠으며 이수주는 한 술 더 떠 10년/12만 마일 워런티로 치고 나오기도 했다.
물론 ‘10년 워런티’는 품질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현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10년 워런티’는 처음 새 차를 구입한 고객에게만 혜택이 있고 보증, 수리 대상도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파워트레인에 한정하고 있어 예상보다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대는 향후 워런티 비용이 증가할 것에 대비, 자금을 꾸준히 적립하고 있다. 미래의 비용을 현재의 비용으로 이미 계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보상비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현대차의 성공에는 우수한 딜러 확보와 HMA의 철저한 현지화 등도 큰 몫을 했다. 현재 현대차 딜러는 640여개. 한 때 인기 없었던 현대 딜러십은 이제 상종가를 치며 딜러를 하겠다는 신청도 줄을 잇고 있다는 설명이다. 고수익을 내는 딜러들도 갈수록 늘어 지난 98년 연 300대 이상 판매 딜러는 12%에 불과했으나 99년 36%, 2000년 52%, 2001년에는 62%로 상승했다. 연 1,200대 이상을 팔아치우는 ‘특급 딜러’도 2000년까지는 2%이하였으나 2001년에는 8%로 네 배 이상 많아졌다.
HMA의 현지화도 두드러져 600여 명의 직원 중 대부분은 현지인이며 한국 파견 직원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 99년부터 현지 경영체제를 강화하면서 최고경영자 겸 사장, 부사장을 비롯한 대다수 인력이 현지인이다.
■달라진 고객층
최근 몇 년 새 현대차 고객층은 교육을 많이 받고 소득이 높은 층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HMA분석에 따르면 구매고객 중 대졸 이상은 98년 54%에서 지난해 75%로 높아졌으며 연평균 소득도 4만700달러에서 5만5,900달러로 37%나 상승했다. 미 조사기관과 소비자 및 딜러 들의 평가가 크게 개선된 것도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동차 전문 조사기관인 ‘오토퍼시픽’은 산타페와 엘란트라를 최우수 모델로 선정했으며 J.D.파워의 소비자만족지수 상승률도 업계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성장 플랜과 과제
어바인 디자인 테크니컬 센터 준공에 이어 현대차의 앨라배마 공장이 2005년부터 생산에 들어가면 내년 중 완공될 캘리포니아시티 주행시험장과 함께 미국내 ‘디자인-생산-테스트’ 라인이 구축, 시장 공략에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의 장래는 자동차 시장의 주류를 이루는 중형차 이상의 판매전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진단이다. 이에 따라 현대의 마케팅도 소형차 중심에서 중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품질에 대한 자신이 생기면서 저가 공략에서 벗어나 고급화로 방향을 튼 것이다. 실제 고부가가치 차량을 분류되는 2만 달러선 차량의 대미 수출량은 98년 1만967대로 전체 물량 중 16%에 그쳤으나 99년에는 18%(3만5,000여대), 2000년에는 28%(8만여대)에서 2001년에는 39%로 늘었다. 올 들어 소나타와 XG, 산타페 등의 판매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현대측은 지금까지는 소형차 판매에 매달렸으나, 수익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중형 모델 공략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에 걸 맞는 판매체제 정비와 기술수준의 향상, 다양한 신모델 개발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HMA 최재국 CFO 인터뷰
앞으로 현대가 도요타, 혼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업계 ‘일류기업’에 진입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HMA의 재무 담당 최재국 CFO는 오는 2005년 앨라배마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내년 중 완공되는 캘리포니아시티 주행시험장과 기존의 어바인 디자인센터와 함께 미국내 ‘디자인-생산-테스트’ 삼각 체제를 구축, 제2의 도약기를 맞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다.
그는 판매량을 기준으로 도요타, 혼다, 닛산에 이에 수입차 브랜드 중 4위를 차지하는 등 이미 중상위 그룹에 들어선 현대가 좋은 품질과 디자인, 강력한 딜러 체제 구축, 적극적인 마케팅을 무기로 이 같은 비전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침체기 때 획기적으로 품질이 개선된 소나타 출시가 상승의 전환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앨라배마 공장이 2005년부터 소나타와 산타페의 후속 모델을 생산하면 연간 판매량 50만대라는 새로운 신화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현지 공장과 디자인연구소, 주행시험장 등의 새로운 투자가 소비자는 물론 딜러들에게도 깊은 신뢰감을 심어주게 돼 판매 증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75년부터 현대차에 몸담아온 정통 ‘현대맨’인 최 CFO는 본사 파견 주재원으로는 최고위직인 전무급으로 본사의 지침을 HMA에 전달하고 현지 사장과의 업무를 조율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로버트 코스매이 사장 직무대행
HMA의 사령탑을 맡게 된 신임 로버트 코스메이 HMA CEO겸 사장 직무대행은 현대의 브랜드 가치와 판매를 계속 성장시키기 위해 딜러, 직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상승세에 있는 현대차의 시장 전략방향 결정과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게 돼 흥분된다며 현대가 지난 5년간 30만대의 판매신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과 디자인은 물론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는 마케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10년/10만마일 워런티는 소비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차’라는 인식을 심어줄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현재의 HMA 마케팅 활동과 제품관리, 광고 전략 등이 혼다와 도요타 못지 않다며 현대차가 이제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밸류어블’한 차로 인식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내년 중 산타페보다 다소 적은 새 SUV 출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모델들이 소비자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산 등 경쟁차종에 비해 중고차 가격이 아직도 낮다는 지적에 대해선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리세일 밸류가 상승,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며 품질 개선과 함께 경쟁차종의 벤치마킹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세일 밸류를 떨어뜨리는 무분별한 플릿세일(fleet sale, 도매판매)과 인센티브를 자제하고 품질로 승부 하겠다고 했다. 지난 98년 HMA에 합류한 코스메이 CEO는 닛산, 애큐라 등 30년 이상 업계에서 일해온 베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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