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에이커 넘는 영구 개발 금지 지역 ‘어바인 랜치 랜드 리저브’
하이킹·바이킹·승마등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하는 등산로 증가중
남들에게 폐끼치지 않으면서 어울려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걷기 밖에 없는 나는 앤젤레스 크레스트 내셔널 포리스트로 산을 찾아 갈 때마다 오렌지카운티에는 좋은 하이킹 코스가 없는지가 의문이었다. 없을 리가 있나, 오렌지카운티에는 엔젤레스 크레스트만큼 산세가 깊지 않을지는 모르나 이 지역 원주민들이 살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야산 5만여 에이커가 막강한 어바인 컴퍼니에 의해 영구 자연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어 조금씩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북으로는 어바인 랜치의 북쪽 끝인 91번 프리웨이 근처 위어 캐년에서 클리블랜드 내셔널 포리스트, 어바인 남쪽과 북쪽 언덕을 거쳐 남으로는 라구나 비치 인근 크리스털 코브 스테이트 팍까지 길쭉하게 초승달 모양으로 펼쳐진 이 ‘어바인 랜치 랜드 리저브’는 그 옛날부터 후아네뇨, 개브리엘리노 인디언이 살던 곳.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바인 랜치의 가축들이 마음대로 뛰어 놀며 풀을 뜯던 곳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질학적으로도 독특하며 남가주에서 가장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이기도 해 1992년부터는 자연보호단체 ‘네이처 컨서번시(Nature Conservancy)’가 생태계와 야산 보호및 관리 업무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총 보유지 9만3,000에이커 중 반을 넘는, 현재 어바인과 뉴포트비치, 코스타 메사시의 총 면적을 합한 것과 비슷한 5만여 에이커를 영구히 개발하지 않고 보존할 지역으로 정해놓은 어바인 컴퍼니는 궁극적으로 이 땅들을 공공소유로 전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미 크리스털 코브 스테이트 팍, 라구나 윌더니스 팍, 바머 캐년은 그렇게 됐다. 그래서 네이처 컨서번시와 함께 시, 카운티및 기타 커뮤니티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하여 이 소중한 자산을 잘 보호하고 육성할 계획및 프로그램을 세울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하기에 적절한 곳들도 속속 찾아내고 있다.
지난 5월 31일에도 라운드 캐년으로 가는 트레일과 라임스톤 캐년으로 통하는 아구아 치논 트레일등 2개의 등산로를 새로 열었으며 이미 여러 코스에 걸쳐 걷기, 자전거 타기, 말 타기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보통 주말 아침에 시행되지만 주중에 하는 것도 있다. 또 밤에 박쥐나 별을 보러 가거나, 낮에 나비 등 특정 동식물을 보러 가는 것도 있다. 매달 보름 무렵 금요일 저녁 6시부터 시작되는 보름달 등산은 언제나 인기라 빨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현재 공개된 트레일의 총 거리는 40마일이 넘는데 참가비는 없지만 모두 미리 예약을 해야하고, 특별히 훈련받아 백과사전처럼 아는 것이 많은 안내인과 동행하는 것들로 항상 1~2개월치 스케줄과 코스를 웹사이트(www. irvineranchlandreserve.com)에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웹사이트에서 골라 전화로 예약을 하면 며칠 전에 모일 곳의 지도를 e 메일로 보내준다.
여러 액티비티의 날짜와 시간, 내용과 종류, 목적지와 거리, 난이도까지 자세히 안내한 웹사이트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것이 이곳에서 축소판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라임스톤 캐년 윌더니스 에리어내 일명 ‘싱크(Sinks)’까지의 2.5마일 거리 하이킹이다. 같은 목적지라도 ‘가족 등산’‘보름달 등산’‘명상 등산’도 있고 나비나 곤충, 파충류, 자생식물이나 지질을 살피는데 중점을 둔 등산도 있는데 지난 8일 하오 4시30분 시작된 것은 ‘명상 (meditation)’등산이었다. 안내하는 신시아 니어만은 여러 곳에서 명상 등산만 인도한다는 전문가. 참가자 12명의 의사를 묻고 반응을 살피면서 여러가지 명상법도 가르쳐 주고, 길가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주변의 동식물에 대해 진지하고도 자상하게 설명했다.
이날 배운 걷기 명상법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한쪽 발을 내딛을 때는 ‘비(be)’, 다른 쪽 발을 내딛을 때는 ‘두(do)’라고 속으로 말하며 걷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심각한 주문일 수도 있지만 팝송에서 흥을 돋구는 구음인 ‘두비 두비’로 가볍게 발걸음 장단을 맞출 수도 있다.
명상하는 등산이니만치 올라가는 동안은 침묵과 명상 속에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던 일행은 때때로 니어만의 주위에 모여 참나무밭이나 그 밑의 벌집,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씨앗을 집 주위에 모아 놓은 개미(토종인 검정색 하비스트 외에 붉은색의 아르헨티나 개미들도 따로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인디언들의 식량이었던 벅윗, 독초 포이즌 오크 같은 식물, 저 멀리 떼지어 날고 있는 새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느 새 정상에 오르고 보니 나타나는 ‘싱크’는 밑으로 움푹 꺼진 절벽에 나타난 퇴적층의 무늬가 선명해, 축소판 그랜드 캐년이란 별명에 수긍이 갔다.
그새 부드러워진 저녁 햇살을 등뒤로 받으며 내려오는 길은 새로 만났어도 그새 친해져 도란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금방 끝났다. 저녁 7시쯤 모두 헤어져 차를 타고 가려니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은 하늘에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을 맞아 막 부풀어 오른 커다란 하얀 달이 두개의 검은 산봉우리 사이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떠오르는 달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보름달 등산도 가고, 5마일 내외의 보통 코스, 나아가 8~10마일의 힘든 코스에도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부풀어올랐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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