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일. 빨간 글씨로 쓰여 있다. 9.11사태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때문인가. 아니, 추석이기 때문이다. 그게 빨간 글씨로 돼 있는 이유다. 한국인 최대 명절 한가위란 말이다.
음력으로 8월15일. 그 날이 올해에는 양력으로 9월11일이다. 우연의 일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묘한 느낌이 든다. 뭔가를 상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구 저쪽은 온통 명절 분위기다. 그런데 다른 한쪽, 미국이라는 땅에서는 ‘9.11’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것, 그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가 한창이다.
“미국은 아직도 전쟁 중인가.” 9.11사태 2주년을 맞아 제기된 대논쟁의 출발점이다.
전쟁은 끝났다. 이제는 평화의 시기여야만 한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매일같이 미군 병사가 죽어간다. 과잉대응의 결과다. 9.11사태는 사실이지 일개 테러집단의 범죄행위일 뿐이다.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고 법적 대응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를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붕괴시켰다.
오만한 일방주의 정책이다.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인가. 테러가 테러를 낳는 악순환이다. 미국은 결국 수렁에 빠졌다. 논쟁의 한 축을 이루는 측의 시각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 다양성, 인권, 민주주의 등 서방문명의 가치를 거부하고 또 증오하는 세력과의 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역사가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다면 전체주의자들에게 유화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의 탈을 쓴 회교근본주의 전체주의는 스탈리니즘, 나치즘, 파시즘과 다를 게 없다.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을 구별한다는 건 그러므로 2차 대전시 나치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의 도조를 구분해 말하는 것과 같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점에서 대량살상무기 존재 여부를 떠나 이라크 침공은 정당하다. 논쟁의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는 편의 시각이다.
어느 편의 다수의 의견인가. 전자가 아닐까.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뒤뚱거린다. 반미 물결이 날로 높아간다. 그러니….
그게 아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편이 아직은 다수의 생각이다. 50∼55%의 미국인이 이 같은 입장이다. 전쟁은 끝났다는 생각은 소수다. 민주당내 좌파, 평화주의자, 사회주의자, 국제주의자 등 미 국민의 20%가 이런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눈 여겨 볼 대목이 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신 보수의자들이 내건 정책에 미국인 다수가 은연중 굳건한 지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전쟁은 세계적 차원의 갈등이다. 미국의 안보, 더 나아가 세계 평화는 민주주의의 확산으로만 지켜진다. 이를 위해서는 선제 공격도 가능하다. 네오콘의 기본강령이다.
윌슨의 이상주의에 키신저의 현실정책 외교노선이 혼합된 외교전략이다. 9.11사태 이후 특히 이들의 주장이 어필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 주장이 옳다는 게 증명돼서다. 한 마디로 설득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네오콘의 외교정책을 일부에서는 2차 대전 직후 수립된 트루먼 독트린과 비교한다. 그만큼 시대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2004년 부시가 재선에 실패해도 네오콘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라크 문제는 정권 교체 밖에 없다. 이것도 네오콘의 전략이다. 민주당도 여기에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도입된 게 선제 공격이다.
북한 정책의 최종 목표도 설정돼 있다. 김정일 체제 붕괴다. 그 포물러도 이미 나와 있다. 군사적 공격을 완전 배제한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경제제재 등의 압력을 최대로 가해 체제를 주저앉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미국서 네오콘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타이밍에, 한국서는 386세대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그 지향점은 정반대의 방향이다. 북한 붕괴 전략에 동참할까. 그래서 이들은 회의 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정부의 태도가 미덥지 않다는 거다.
“김정일은 위험한 핵 장난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노 대통령은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가 보다 효과적인 (대북한) 정책 수행에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고 미국이 판단할 때 그 어려움은 가중될 수 있다.” 6자 회담을 전후해 나온 한 신보수주의 논객의 지적이다.
네오콘의 영향력을 한국의 386세대는 혹시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게 아닐까. 추석날, 9.11 2주기 날을 맞아 언뜻 스치는 생각이다.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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