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은행 부임은 내 인생 최대의 결정”
약력
▲60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
▲72년 UCLA MBA 졸
▲71년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
행 입행
▲81년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
행 아·태 담당 총괄 수석부행장
▲84-88년 노드롭 국제금융부 총책임자
▲88-94년 한미은행장
▲94년-2003년 나라은행장
41세에 금융계 첫발 10년만에 부행장 ‘신화’
‘한인은행계의 대부’‘카리스마의 리더’등 명성
폐쇄직전 은행 맡아 한인업계 2위로 키워내
“도전으로 살아온 인생... 불가능한 것은 없죠”
‘금융계의 국제신사’ ‘한인은행계의 대부’ ‘카리스마적 리더’…. 41세에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뎌 미 주류와 한인 금융계에 숱한 화제와 놀라움을 동시에 엮어 냈던 벤자민 홍(71) 나라은행장이 32년간의 은행생활을 접고 2선으로 물러난다.
지금 같으면 은퇴할 나이에 말단으로 은행에 들어간 두둑한 베짱, 외국은행인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에 입행한지 10년만에 극동담당 부행장으로 오르는 비상한 두뇌, 그리고 폐쇄직전까지 간 미주은행을 넘겨받아 9년만에 한인은행 순위 2위의 자산규모 10억 달러 은행으로 키워낸 능력과 리더십은 그만의 자랑을 넘어 우리에게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사랑과 감사,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은행생활을 한지 30년이 넘었지만 돌아보면 정신없이 살아온 짧은 세월이에요. 남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되도록 만들어 보고 싶은 도전정신이 함께 할 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홍 이사장은 인생에 수없이 많은 중요한 결정을 했지만 그 중에도 40이 넘은 나이에 은행 생활하기로 한 결심과 지난 94년 한인사회에서 제일 큰 은행인 한미은행장을 그만두고 당시 장래가 불투명한 나라은행 행장으로 갔을 때가 가장 큰 결정중의 하나라고 회상한다.
“나라은행장을 맡기로 결심한 당시의 30여 직원들의 초라했던 모습, 2주일내에 20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모아야하는 부담, 주변의 질투와 우려섞인 시선 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홍 이사장은 그래서 지금도 할 일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9년동안 ▲전체 자산규모 5,000만달러에서 10억달러로 ▲주식가격 1달러50센트에서 20달러 5센트로 ▲점포수 1개에서 전국 22개 점포로 ▲직원수 30여명에서 310명으로 키워내면서 3가지의 감사를 잊지 않았다. 바로 어려움속에 불호령 같은 꾸중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따라준 직원들, 경영진을 믿고 과감히 지원해준 이사진들, 그리고 한결같이 애용해준 고객들에 대한 감사다.
홍 이사장이 이같은 외형성장을 일궈낸 비결은 그가 한미은행장으로 일하면서 미국식 뱅킹과 한국식 뱅킹을 접목시키면서 얻은 노하우를 나라은행에서 실천한 것이라고 주위에서는 보고있다.
한미은행장 시절 한인은행가운데 처음 시도한 SBA 융자가 4·29폭동과 경기침체를 맞으면서 주목을 받은 것과한인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98년 1월 나라은행 주식을 나스닥에 상장해 주류사회 진출의 발판을 놓은 것도 그의 공적으로 꼽힌다. 그는 나라은행 주식을 나스닥에 상장, 그동안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오던 한인은행이 영업실적을 토대로 한 질적 성장에도 비중을 두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홍 이사장의 가장 큰 업적 중의 하나는 역시 한인은행 처음으로 시도한 은행 인수·합병.
한미은행장 시절의 글로발 뱅크 인수, 나라은행장 시절의 뉴욕 제일은행 인수 등이다. 그는 “제일은행 인수를 통해 나라은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나라가 인수한 은행은 외환은행 플러싱 지점, 뉴욕 제일은행, 뉴욕 기업은행, 아시아나은행, 외환은행 브로드웨이 지점등 5개이다.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계획하고 있다. 전 세계 한인 거주지역에 나라은행 점포를 설치하고 후배들에게 ‘뱅커(Banker)다운’ 뱅커 정신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것을 나라은행을 해외 최대의 한인은행으로 성장시키고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또 행장으로 일할 때보다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보다 많은 시간을 후배들과 만나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또한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는 등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일에도 열심을 낼 계획이다.
그는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은행가가 적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다. 훈련과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미국계 은행보다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만큼은 프로가 되라”고 권고한다. 항상 노력하는 사람만이 프로패셔널해질 수 있으며 은행가 생활을 아무리 오래 했어도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은 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가 중시하는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이 중요한 것인지, 자기성취가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 중요한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자기 가치가 뚜렷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또한 10년동안 100만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수익의 커뮤니티 환원을 지난 2001년 시작한 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나라 이사회는 장학금과는 다른 종류의 이익 나누기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이사장으로서 은행장을 포함한 경영진이 편한 마음으로 경영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겠다는 결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이사회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장기적인 전략을 짜면서 커뮤니티에 나라은행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철학과 스타일
홍 이사장의 인생철학은 사랑이다. 그는 지난 30여년간의 은행 경력을 회상하면서 “일을 사랑했고 일터에서 만난 후배들을 사랑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후배들에게 계승해 줄 계획이다. 자신도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 등에서 은행 생활을 하면서 상사와 맺은 인간적인 관계가 성장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상한다. 행장이면서도 텔러와도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거리감없이 지낸 것도 미국계 은행에서 일하면서 몸에 밴 미국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는 또한 스스로를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항상 새로운 지식을 취득하기위해 힘쓰고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한가지씩 배우는 자세로 임하며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그의 스타일이 은행인수와 합병 등을 통한 은행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박흥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