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종합주가지수(KOSPI)는 3월17일 515 포인트의 저점에서 지난 21일 종가 752 포인트까지 5개월 동안 46%나 급등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주가 단기급등함에도 투자해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다는 점이다. 1999-2000년 초 대세 상승기에선 직장인, 가정주부, 심지어 술집 아가씨들도 손님에게서 정보를 듣고 주식을 살 정도로 열기가 달아올랐었다. 그런데 지금은 깡통 찰 각오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 제값을 찾아 손해는 면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뉴욕 증시도 이라크 전쟁이 터지던 3월을 저점으로 황소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전쟁이 단기에 끝나고 성장률이 1/4분기 1.4%에서 2/4분기엔 3.1%로 급등, 미국 경제가 회복할 조짐이 완연해지면서 뉴욕 주가는 새로운 거품을 걱정할 정도로 올랐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지난 상반기에 한국 역사상 세 번째로 경기침체에 진입했는데도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다.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틀)이 뒷받침하지 않고, 한국 사람들이 투자의 덕을 못보는 상황에서 증권시장이 급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핵 문제가 해소되고 SK 글로벌 회계분식의 우려가 가라앉았기 때문이라는 여의도 증시의 분석도 설득력이 없다.
이 의문은 한국 증시가 외국인의 놀이터가 되어 있고 한국 경제 여건보다는 국제금융시장의 기류 변화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한국 증시는 이미 외국인과 내국인의 전쟁터 차원을 넘어 외국인간의 경쟁 장소가 되어버렸다. 증권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거래소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비중은 외환위기 때인 98년 말 17.69%에서 2000년 말 30.19%, 2002년 말 36.01%로 증가했으며, 26일에는 한때 38.11%에 이르렀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비중이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인 비중이 아직도 60%를 넘는데도 어쩌다가 외국인들에게 시장을 내주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제는 거래 가능한 주식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 증시의 외 국인 비중이 70%를 넘는다는 사실이다.
대주주 지분, 정부 보유지분, 은행의 출자전환지분 등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주식을 제외할 때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의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증권거래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증권투자인구는 97년 133만 명에서 2002년 309만 명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에 대한 비율이 4.1%에서 8.3%로 급증했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에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와 시중은행의 자산 매각, 대기업의 증자가 이뤄질 때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적극 매입한 반면 한국인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자국 시장에서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것이다.
이번 증시 상승기에 한국의 투자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외국인들이 시장의 3분의2를 장악한 만큼 이젠 현지 투자자(한국인)와의 싸움을 피하고 자기들 간의 싸움을 벌일 정도로 한국 시장은 국제화(?)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증시의 또 다른 딜레마는 경기가 침체하고 있는데 주가가 오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국제 자본시장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올 들어 미국 정부가 달러 약세 정책을 취하면서 유로화가 달러에 대해 20% 이상 절상됐다. 이에 따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의 경제가 미국 경제가 분명한 회복기조를 보인 지난 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국제시장을 무대로 뛰는 글로벌 펀드들의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필요가 생겼고, 그들은 유럽 비중을 줄이고, 아시아로 방향을 바꾸었다. 한국도 그 중 하나에 포함됐다. 국제 투자 펀드들에겐 아시아 투자비중이 유럽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고, 따라서 아시아 시장은 이들의 자그마한 포트폴리오의 변경으로도 금새 달아오르는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여의도에 갇혀 있는 한국 투자자들이 국제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돈을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따라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인들은 남의 잔치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inkim@koreatimes.com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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