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중간 시험 점수가 ‘45점’으로 나왔다. 100점 만점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 수치는 노씨의 집권 반년을 맞아 서울의 한 일간지가 여야 의원을 상대로 조사한 ‘노무현 평가’의 결론이다. 야당 의원들이 매긴 평균 점수는 ‘34 점’, 아예 책가방 싸라는 요구다.
야당이 그처럼 짜게 점수를 매긴 데는 정치적 대결관계라는 의도적 ‘깎아 내림’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같은 식구인 민주당 의원들의 점수는 어떻게 나왔을까.
‘59점’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나라도 후한 점수를 줘야지 안 그랬다가는 참혹한 성적이 나오지 않겠느냐”며 ‘70’점을 주더라는 것이다. 신당문제로 노씨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당내 구주류(DJ계) 일부를 감안하더라도 여당 쪽 평균점수가 ‘E 학점’으로 나왔다는 것은 하나의 명백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에 문제 있음”--그의 눈앞에 바짝 들이민 ‘옐로카드’다. 야당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이 보다 더 못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치욕적인 혹평이다.
구체적인 이유도 들이댄다. 무늬만 개혁정권일 뿐 정권실세들이 초장부터 부정부패에 흠씬 젖었고, ‘멋대로 인사와 코드 맞는 인사’로 DJ정권의 ‘호남편중 인사’ 저리 가라할 정도라고 목청을 올린다.
한총련 합법화를 강행하는 와중에 미군이 기습당하지 않나, 10년 내 자주 국방론을 내세워 미군철수에 부채질을 하지 않나, 보수단체가 북한깃발을 불사르자 북한이 대구 U대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협박, 이에 대통령이 부랴부랴 사과하는 저자세를 보이지 않나--하여튼 국가안보는 백척간두에 내몰렸다고 격앙한다. 그저 툭하면 언론에 분풀이하고 급기야 비판언론만 골라 수십 억 원의 소송까지 거는 게 대통령으로서 할 짓인가 하고 힐난한다.
대통령이 노조 편을 들어 연일 파업사태가 일어나는 통에 경제는 침체하고 외국자본은 빠져나가고 실업자와 파산자가 늘고 있는 현 시국을 “총체적 위기”로 진단한다. 드디어 야당 대표 입에서 “우리는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 정권 퇴진을 말할 때가 된 게 아닌가 걱정”이라는 강경 발언이 튀어나올 정도니 대통령 체면은 뭐며 나라꼴은 뭔가.
시국이 불안하고 백성들 심기가 불편할 때면 기막힌 해학(새타이어)이 나도는 법이다. DJ 3아들들이 이 돈 저 돈 집어삼킬 때 ‘홍단 고스톱’이 대유행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시 머리 좋은 한국사람들이 지금 이 때를 놓칠 리 없다. 이른바 ‘개구리 담론’이다.
술자리에서 오가던 이 말이 야당 당사에서 공개되면서 일시에 전파됐다. 노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한 개그다. ‘올챙이 쩍 생각 안하고, 때도 시도 없이 울어대고, 가끔 구슬프게 울고, 어디로 뛸지 모르고 생김새가 비슷하다.’ 청와대는 곤혹에 찬 표정이다.
‘국가원수를 그런 식으로 모독하다니--’하면서 분을 삼키고 있다. 자기들이 떠받들고 있는 ‘군주’가 양서동물에 비교된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닐 터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개구리 시리즈가 보도된 같은 날, 노무현씨를 정계에 입문시킨 YS(김영삼)가 직격탄을 날렸다.
“나라가 이토록 존망의 기로에 서 있는데 대통령이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무능하고, 무지하고, 대책 없는 정권이다.” YS의 ‘3무 정권’ 논평에 국민들은 솔직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속 시원하게 말하는 전직 대통령으론 YS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기는 잘 한 게 뭐 있나하는 부화 때문이다.
더욱 흥미를 끈 것은 ‘노무현의 갑작 출세’를 도와 준 DJ까지 뭔가 심상찮은 말을 던졌다는 점이다. 퇴임 후 첫 공식 석상 연설에서 듣는 이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묘한 말을 했다. 한 줄 인용하면 이렇다.
‘2300년 전 중국의 맹자가 이르기를, 임금의 권력은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하라는 천명과 더불어 내린 것이다.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괴롭힌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추방할 권리가 있다.’ 다시 읽어봐도 묘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 등극한 집권자에 대해 “하야를 생각해야 할 판”이라는 비난이 일고, 노 대통령 자신도 “하야 안 한다”고 일종의 금기된 언어를 스스로 제기한 마당이라 ‘임금 추방’ 고사를 소개한 대목이 심상치는 않다.
노무현 정권 탄생에는 DJ 책임이 크다. 민주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호남표를 몰아 준 이면에 DJ가 버티고 있었던 건 세상이 아는 일 아닌가. 한마디로 DJ는 ‘노무현의 정치적 대부’였던 셈이다.
한데 대북송금이라는 큰 의혹 덩어리 중 한 조각을 노 정권의 검찰이 칼질을 하자 심기가 크게 뒤틀려있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임금 추방론’은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자신은 ‘현군’으로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입장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전직들의 현직 씹기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갈 이 나라, 조국 앞날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라는 더 어려울 게 분명하다. 집권 세력의 자기 반성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노 대통령 자신부터가 그렇다. “나는 처음에 늘 실패했다.
하지만 막판에 나는 승리했다”고 그는 자만하고 있다. 대통령 자리까지 올라가는 동안 실패와 승리가 교차한 건 그의 문제다. 하지만 나라 운명을 걸머진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처음이고 중간이고 마지막이고 국정을 늘 성공적으로 끌고 갈 책무를 진다. 한번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젠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투쟁과 반전의 명수’로 남아 있다. 정말 나라가 걱정이다.
안영모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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