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턴 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상금 100만 달러가 넘는 이 상은 1972년 제정된 이래 테레사 수녀를 시작으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 반체제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 유명 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 등 다양한 분야 종사자들이 받았다. 수상자 중 물리학자가 여러 명 있는 것은 17세기 과학 혁명 이후 갈라져 온 종교와 과학의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템플턴 재단의 주 임무이기 때문이다. 템플턴 재단은 이 상 이외에도 매년 4,000만 달러를 종교와 과학의 화해에 관한 연구를 지원하는데 쓰고 있다.
‘종교적 다양성의 수용’도 이 재단이 추구하는 목표의 하나다. 이 상 수상자 결정 위원회에는 기독교인 뿐 아니라 유태인, 힌두교도, 회교도, 불교도 등 전 세계 종교인 총망라 돼 있다. 재단 창립자인 템플턴은 최근 유교와 도교에서 조로아스터교에 이르기까지 세계 종교의 기본 원리를 총망라한 ‘세계 종교의 지혜’라는 책도 펴냈다.
템플턴은 자선가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전설적인 투자가였다. 1912년 테네시의 윈체스터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에 다녀온 온 후 월가에 투신했다. 가장 먼저 투자 대상을 전 세계로 넓힌 인물의 하나인 그는 IMF 위기가 오기 수년 전인 1992년 자기가 운영하던 투자그룹을 4억 4,000만 달러에 모두 처분하고 금융계를 은퇴했다.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 각 국 정치인들이 세계화라는 단어를 노래하던 시점이다. 머니 매거진이 ‘금세기 최대의 글로벌 주식 투자가’라는 칭호를 붙여준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귀화해 영국 시민이 된 그는 1987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아 ‘템플턴 경’이 됐다.
그가 처음 주식에 투자한 것은 1939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던 시점이다. 미국은 아직 대공황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어디를 둘러봐도 어두운 뉴스 뿐이던 시절 그는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비롯 104개 사 1달러 미만 주식 100주씩을 샀다. 이중 망한 회사는 넷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큰 이익을 냈다. 1954년 그가 차린 템플턴 성장주 펀드는 발족 당시 10만 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99년 현재 5,500만 달러로 재산이 불어났을 정도로 경이적인 상승을 거듭했다.
그는 은퇴했지만 지금도 가끔 경제 현황에 관한 의견을 밝힌다. 증시 광풍이 한창이던 1999년과 2000년 미 주식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발언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에퀴티 지와의 인터뷰에서 의미 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 주식 시장은 망가졌다. 이를 고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과거 증시 침체는 반드시 부동산 침체로 이어졌다. 이번에 집 값은 평균 20% 이상 올랐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집 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상당히 내려갈 것이다.” “지금 미국의 총 부채는 31조 달러에 달한다. 미 GNP의 3배 수준으로 주요 국가 치고 유례가 없는 일이다” 등등.
지난 두 달 사이 장기 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연방 국채 수익률은 3%에서 4.6%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5%대이던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도 6.4%로 뛰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이렇게 큰 폭으로 장기금리가 오른 것은 미 역사상 드문 일이다. 재융자 건수는 5월 피크에서 70%나 곤두박질 쳤으며 주택 융자 건수도 감소세로 반전하고 있다. 이미 신규 주택 재고는 9년 내 최고, 기존 주택 재고는 12년 내 최고로 늘어났다.
2001년 이후 미국인들의 재융자 총액은 GDP의 절반 수준인 4조 5,000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 수년간 주가 폭락과 함께 불황에 빠진 미국 경제의 유일한 생명선은 낮은 금리와 주택가 상승을 이용한 재융자 붐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파른 장기 금리의 상승은 재융자와 주택 경기에 찬물을 붓는 것은 물론이고 비즈니스나 정부나 개인 모두 부채 부담을 무겁게 함으로써 투자와 지출을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주택이나 주식이나 미국 경기에 관한 전망은 낙관 일색이다.
보통 사람이 미국 경제의 앞날을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도 한가지 길은 있다. 수 십 년 간 증명된 업적이 있는 대가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템플턴은 2000년 하이텍 붐이 절정을 이뤘을 때 주위의 압력과 비난에도 불구, 자기 길을 걸은 워런 버핏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투자의 귀재다. 미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그의 경고를 흘려듣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민 경 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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