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점을 찾아서
오렌지카운티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취미 생활을 돕는 전문점들도 많다. 가끔씩 각종 전문점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중고서적 전문점 ‘북맨’, 오렌지-헌팅턴 비치-인터넷에 매장
소장 50여만권중 33여만권 데이터베이스, 구매 및 교환도 해
서울의 청계천 상가가 헐린다니 그곳에 있던 헌책방들이 생각난다. 고만고만한 중고서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줄지어 있는 거리, 좁은 가게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로 넘쳐 나온 책들, 무언가를 찾아내고야 말 각오인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의 사람들, 꼭 필요한 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책방들을 순례하며 지식의 허기인지, 허영인지를 채우러 온 사람들이 자아내던 그곳 특유의 분위기가 모두 다 그리운 옛날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거리를 꽤 드나들면서 책을 사들였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얼마 전 폐간된 미국 만화책 ‘MAD’ 뿐이다. 만화 속의 영어는 어려웠지만 우리와 너무 다른 희한한 발상들에 매료되어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사실 헌책방이 아니라면 그런 책들을 어디 가서 구했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한국서 출판되는 새 책을 사기는 편해졌지만 한번 읽고 나면 처리하기가 마땅치 않고, 과거에 나온 책일 경우 인터넷 서점에서 찾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 시간 많이 들고 불편한 그 옛날 중고서점이 그립기도 하다.
오렌지카운티에는 대형 중고 서점이 2개나 된다. 애나하임, 풀러튼, 롱비치에서 영업하는 ‘북 배런(Book Baron)’과 오렌지, 헌팅턴 비치에서 매장을 갖고 있는 ‘북맨(Bookman)’이 그것으로 이밖에 브레아(A to Z Books & Gifts), 코스타메사(New & Recycled Romances, Thinker Used Books), 파운틴밸리(Camelot Books), 가든그로브(Bad Moon Books), 라구나 비치(Barnaby Rudge Booksellers), 라구나 힐스(BOOKS ETC), 라구나 니겔(Paperback Trading Co.), 미션 비예호(Book Corral), 터스틴(Tustin Books-Old Town), 요바린다(Books Redux)등지에도 소규모, 책 이외에 다른 것들도 취급하는 중고서점들이 있다.
1980년에 밥 & 로이스 와인스틴 부부가 애나하임(1236 S. Magnolia Ave.)에 1,200권으로 창설한 북 배런 1호점은 현재 2만 스퀘어피트가 넘는 매장에 50만권 이상의 인벤토리를 확보하고 있다. 1990년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 사이인 데이빗 헤스와 폴 보나벤처가 오렌지(840 N. Tustin Ave.)에 차린 ‘북맨’도 발전을 거듭, 역시 50만권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각자 웹사이트를 통해 필요한 책을 찾아보고,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주문만 해놓고 매장에서 찾아갈 수 있도록 현대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22만권이 진열되어 있는 북맨의 오렌지 매장에 들어서면 그 옛날 도서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세세히 잘 분류된 책들이 천장까지 꽉 차게 꽂혀 있는 나무 서가들이 줄지어 이루는 복도 사이로는 야트막한 계단식 사다리들이 놓여 있어 키 작은 사람들도 편리하게 저 높은 곳에 꽂힌 책을 빼 볼 수 있다. 희귀본들은 유리 캐비넷 속에 따로 보관했고 계산대 옆에는 새로 들어온 책들만 따로 진열해 놓았다. 계산대 뒤 벽에 붙여 놓은 “당신이 읽지 않았으면 새 책”이라는 모토는 정말 옳으신 말씀이다.
50여만권중 33만권 이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온라인에 올려놓았다는 이곳의 책들은 각 분야를 총 망라하고 있고 오디오 북 섹션도 따로 있다. 찾아보니 전쟁 섹션에 ‘한국전’, 여행 섹션에 ‘한국’이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가격은 60센트짜리 페이퍼백부터 고가의 수집용 도서들까지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은 8~15달러선으로 평균 10달러다. 중고 서적의 가격은 책의 상태와 희귀성, 인기도에 따라 다르게 정해지므로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20세기의 천재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친필 서명이 든 레코드도 판매한 적이 있다는 이 서점에서 현재 가장 비싼 책은 1779년에 초판이 나온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기 저작 ‘Political, Miscellaneous, and Philosophical Pieces’로 2,500달러. 보드 위에 무늬 종이를 붙인 표지와 제본은 낡았지만 안은 깨끗해 읽기에 지장이 없다.
이 서점은 책을 구매도 하고 교환도 해준다. 그 책을 서점이 되팔 가격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크레딧을 주는 것으로 대여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책을 읽는데 대해 약간의 수수료를 내는 도서관과 다를 것이 없는 기능이다. 손님 중에는 다 읽은 책을 가지고 와 카운터에 놓고 새로 책을 고르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양한 경로로 입수한 중고 서적들을 하나같이 독서광인 직원들이 깨끗이 가다듬어 분류하고 가격을 매긴다는 이 서점은 LA부터 오션사이드까지 남가주를 망라하는 지역에서 고객들이 찾아온다. 개업하던 13년전의 첫 고객은 물론 많은 이들이 단골이다. 3년전 개설된 온라인 스토어가 이용객이 많아지면서 매장 한쪽을 전용으로 배당하기도 했다.
주중엔 밤 8시까지, 주말에도 여는 이곳에서 서울에 관한 사진집을 하나 사들고 나오자니 집에 있는 다 읽은 책, 읽다 만 책, 사다 놓고 읽지는 않은 책들에게 새 주인을 만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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