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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미국 경제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경제를 수렁에 빠트린 원흉인 제조업 부문에 주문이 늘어나고, 투자 마인드가 회복되고 있다. 7월 실업률이 하락하고,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자산 시장의 거품이 완전히 꺼졌는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있지만, 연방정부와 중앙은행의 경기부양 조치의 효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유럽 경기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15년 가까이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도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패턴을 보면 선진국 경기가 좋아지면, 정보기술(IT) 분야가 밀집한 한국 경제가 먼저 신호를 받아 회복했다. 선진국 기업들이 수요 확대에 대비, 국제경쟁력이 높은 한국에 원자재 주문을 냈다. 그래서 한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선행 지수 역할을 했다. 선진국 경제의 흐름이 한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97~98년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에 처했지만 당시 미국 경제가 활황을 유지했기 때문에 한국은 원화 약세로 높아진 수출경쟁력을 활용, 세계가 놀랄 정도의 빠른 회복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선진국 경제가 회복하는 시점에 한국 경제는 탄력을 받지 못하고, 경기침체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선진국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 경제도 동반 하락했다며 불황의 탓을 외부로 돌렸고, 특히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보수 언론들이 불황을 과장하고 있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데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
를 들어보면, 지금 경기가 IMF때보다 더 악화돼 있다고 울상이다.
며칠전 뉴욕에 소재하는 경기사이클연구소(ECRI)가 최근 한국이 경기침체 상태에 진입했다고 발표한바 있다. 이 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진 요인으로 크레딧 카드 부실 확대에 따른 소비 악화, 기업 투자 부진, 수출 약화를 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번 침체가 오일 쇼크와 10·26 사태가 겹쳐 발생한 79~80년의 침체와 97~98년의 외환위기만큼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한국의 보통사람이 하는 불안감이 미국 분석기관에 의해 입증된 것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 한국 경제에도 득이 된다. 수출이 늘어나고, 제조업 가동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소비 위축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수출 확대가 경기 침체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ECRI의 진단이다.
문제는 정부에 있다. 미국에서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 부양에 힘써 왔다. 미국의 부양정책은 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금리 인하로 기업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고,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었으며 달러 약세를 통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운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던가. 물러난 김대중 정부는 전임 김영삼 정부가 말기에 외환위기를 막지 못해 경제를 망쳤다는 비난을 받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몰라도 방만한 크레딧 카드 시장을 방치하며 소비를 부추겨 경기를 띄우는데 주력했다. 크레딧 시장은 1~2년후에 벌 소득을 미리 까먹으며 소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젊은이들이 10여장의 카드를 들고 흥청망청 쓰도록 방치한 덕분에 2001~2002년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도 한국 경제는 4~6%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그 역효과는 올해 나타났다. 크레딧 카드 부실이 커지고, 은행들이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소비가 급감했고,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내수 부진에 의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 경기 부양조치가 경제 구조를 왜곡시킨다며 미뤄오다가 최근에 미봉적인 부양책을 제시하고 있다. 선제적 부양조치가 적은 재원으로 큰 효과를 보는 것이 경제법칙인데, 실물경제가 꺾어진 다음에 미온적인 부양정책을 사용한 결과로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이 경기 부양책을 제시하고, 집권 여당은 소모적인 이념 논쟁에 빠져 있는 현주소에서 한국은 세계 경제가 선순환으로 돌아서는 시점에 도약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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