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사람들은 나라의 장래에 대한 두 가지 큰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북한과 미국간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투표로 뽑은 노무현대통령의 무능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이다. 이 두 가지는 별개의 사안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 서로 맞물려 있어 체감스트레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핵 문제와 관련해 대립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미국과 북한이 정말 충돌할 것인가. 전쟁이 난다면 언제쯤 날 것이며 도대체 어느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한국인들 입장에서 미국은 우방이고 북한은 동족이다. 미국을 지지하지만 남북한이 받을 그 엄청난 피해를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북한 편을 들자니 그건 말이 안 된다. 북한정권이 싫지만 전쟁은 안 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또 죽도 밥도 아니다. 결코 미국도 북한도 버릴 수 없는 관계다. 미국은 오랫동안 한국에 많은 도움을 주어 왔고 지금도 한국은 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북한은 언젠가는 남한과 통일돼야 하는 한 핏줄이다. 북한 체제가 비록 반인륜·반민주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보면 그만인 사이가 아니다. 서로 합심해도 뭣할 텐데 북한정권은 못된 짓만 골라 한다. 차리리 남만 못한 현실이다. 차라리 그들이 동족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골치 아플 이유도 없다.
언제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 것인가. 대책 없는 인내가 과연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길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다. 고민만 깊어질 뿐이다. 궁여지책으로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분리해서 생각해 본다. 사실 북한 정권이 문제지 주민들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는 않다. 아무리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인도적인 원조를 해도 북한 정권이 이를 주민들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북한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해도 결국 죽어나가는 것은 북한 주민들이다.
북한 정권은 지금 그런 북한 주민들을 인질로, 남한을 담보로 잡고 미국과 위험한 핵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권안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들의 기득 권력을 유지해보겠다는 몸부림이다.
북한주민들을 잘 살게 하고 국제사회에 위협만 안 된다면 체제를 문제삼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까 마냥 두고 볼 수만 없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쟁을 하지 않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 설사 방법이 있다고 해도 많은 시간과 인내가 요구된다. 된다는 보장도 없다. 북한 정권이 그것을 용납할 리도 만무하다.
다자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최후로 꺼내든 카드가 핵무기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도 안통하면 그 다음은 낭떠러지다. 언제까지나 북한정권이 지금과 같은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상황이다. 그들도 그것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앞으로 수년 내 한반도가 장래의 명운을 좌우할 큰 변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어떻게 이에 대처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명운이 좌우된다. 이 중요한 때 정신 바짝 차려도 힘든 상황인데 도대체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대통령은 고립무원 속에서 좌충우돌이고 집권여당은 권력다툼으로 분열돼 이전투구만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도 세대·지역·이념·계층으로 갈려 서로 얼굴만 붉히고 있다. 경제는 어떤가. 말로만 ‘2만 달러 시대’일 뿐 따라주는 현실성 있는 정책이 없다. 자연 국민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4년 반 동안의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없을지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큰 위기다. 사정이 이처럼 급박한데도 노 대통령은 그것을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거저 탈 권위주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 탓은 하나도 없고 모두 언론 탓, 야당 탓, 보수 탓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사람들은 이제 공공연히 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 선거를 다시 하고 싶다고 한다. 이제야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랴. 국민투표로 뽑은 대통령을 도중에 물러나라 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두고보자니 속만 부글부글 끓는다.
한국 사람들은 올 여름 무더위를 몇 갑절로 느끼며 보내고 있다. 가을에는 시름이 더욱 깊어질 것 같으니 더 문제다. 시원한 가을에 대한 기대마저 없는 잔인한 여름이 지나고 있다.
안병선/SF 지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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