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고르지 못하고 일교차가 심할 때는 앨러지가 극성을 부린다. 사람에 따라 봄철에 꽃가루 앨러지가 있는가 하면 환절기의 기온 변화, 여름철의 냉방으로 인한 앨러지 등 다양한 앨러지가 있다. 앨러지는 인체가 주위 환경에 과민반응하여 생기는 병적 현상인데 한 번 걸리면 그 고통이 여간 심하지 않다.
사람의 몸이 환경에 과민반응하여 앨러지가 생기는 것처럼 사람의 정신이 환경에 과민반응하면 정신적 장애를 일으킨다. 정신적 과민반응으로 생기는 질병의 예가 우울증이다. 대인관계의 스트레스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불안, 우울, 좌절, 공허감을 갖게 되고 심해지면 무력감, 염세적 사고에 빠지게 되어 육체적 질병까지 일으키는 것이 우울증이다. 그래서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을 가진 여자가 남자에 비해 2배 이상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흔히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은 정신건강 면에서 문제가 많다고들 말한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들의 주위환경이 그만큼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있다는 말이다. 우선 언어의 불편과 문화의 차이에서 느끼는 이질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여건, 마음놓고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인간관계 등 미국생활의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더욱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성공과 자신의 실패를 비교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환경에 과민반응하면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우리 주위에는 조그만 일에도 화내고 짜증을 부리는 사람들, 자기 말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사정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을 횡설수설하고 행동마저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 극단적인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서 이런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은 우리 주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곳에도 있다. 어느 지역이나 어느 집단에 국한하지 않는 이 시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다양성이 특징이다. 문화적 다양성, 사회적 이념의 다양성, 경제적 격차의 다양성, 여론의 다양성 속에서 한 개인은 자신과 다른 이질감을 수없이 부딪히면서 살아야 한다. 이 이질감이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데 이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간의 가족관계, 친구간이나 동료 간 같은 인간관계도 옛날과는 같지 않고 국가와 개인, 사회와 개인 또는 어떤 소속 집단과 개인과의 관계에서도 고전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불안과 불신이 우리의 생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여 정부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서 국가나 사회보다는 집단이기를 추구하게 되고 집단 속에서도 개인 이익을 도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한다는 생각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소를 위하여 대를 희생시키는 대립분쟁이 만연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 보혁 대립이 심하고 여론의 분열이 심하고 정의와 양심이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것은 이기심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 이처럼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 과민반응을 한다면 영락없이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고 말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 세상은 이미 그런 환경이 아니라 오염으로 가득 찬 환경이 되고 말았다. 이런 환경에서 정신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체질을 강화하는 길 밖에는 없다.
우리는 민족의 정체성이니 한인의 정체성이니 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많은 민족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서 지켜나가자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복잡한 사회는 집단의 정체성만으로 대처할 수 없다. 남이 어떻게 살고 있고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자신 있게 이끌어 가는 것만이 정신적 질병을 이겨내는 길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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