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을 펴놓고 동그라니 앉았다. 가끔은 별과 하늘도 바라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도 나눌법한데 처음부터 끝까지 율동과 게임만을 즐긴다. 박자와 음정을 제대로 맞추자니 세월의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물결, 그 탁류에 내가 떠밀리고 있는 것이다. 세대 차이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세대간의 골을 좁히고 한인사회의 청사진을 그려보자는 토론장에서 2세들은 1세와 일부 1.5세를 구세대라는 용어를 써 가면서 그들만의 한인 커뮤니티를 냉랭한 어조로 비판하였다.
따지고 보면 한인 커뮤니티의 구심점이라 할 한인회가 “장장 20대하고도 몇 대’를 이어왔노라고 내세우지만 후임자가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정성껏 다리를 놓아주려는 생각보다 단발적인 일회성 친목 단체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데 우리가 잘못 본 것인가.
한인회 부서에 젊은 2세로 구성된 ‘차세대 위원회’ 같은 기구를 가동시켜 젊은 세대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그들을 각 부서의 일원으로 기용할 의사는 없는가. 봄·가을 야유회, 3. 1절 광복절 행사, 망년회 등 행사만 보더라도 “동질적 반복"에서 “이질적 비약"으로 발 돋음을 해야 하는데 구태 의연하게 해마다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참가 인원의 성황을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1세들의 ‘경영 마인드’나 ‘상도(商道)’에 대한 의식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학술 영어를 섞어가며 열을 올렸다. 듣다못해 한 1세 참석자가 “젊음을 반납하고 자식을 위해 뼈 빠지게 일만 한 1세도 염두에 둬야지 그렇게 거북한 곳만 쑤시면 되는 건가 …" 다소 상기된 어조였지만 대다수의 1세 참석자는 그들의 제언을 십분 이해한다면서 앞으로 개선책을 내 놓겠다면서 진땀께나 흘려야 했다. 늘 듣는 얘기로 ‘요즘 젊은이들이 한인 사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느냐’라는 선입관이 완전히 뒤집힌 셈이 되었다.
지난 8, 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인비즈니스를 위한 백악관 브리핑에서 2세들은 그들의 철저한 조직력과 단합 그리고 완벽한 영어와 한국어 구사로 깔끔하게 이 행사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어느 대도시의 2세 단체 모임에서는 젊은 회장에게 이민 100주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인이 미국으로 이민 온지 100년이나 되었느냐"고 되물으면서 “아무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 아예 공식적인 2세 단체가 없는 한인사회도 있다.
젊은 세대에게 지적을 당한 일부 1세의 경우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한인사회에 관심이 없는 일부 젊은 세대의 경우나 그 원인은 1차적으로 1세의 몫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인생 선배로서 이렇다 할 길잡이 구실을 못해 주었다면 이것만으로도 그 책임조재는 충분하다. 1세들은 그들의 의견을 이유 있는 세대 고발로 받아들이고 또한 그들의 세대 감각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즈음 미국에서 미국계 젊은 세대를 ‘나만의 세대’(Me Generation)라고 한다. 가수 마돈나로 상징되는 아집이 센 극단적 개인주의의 세대라는 뜻이다. 20, 30대가 된 자녀가 미국에서 중·고교를 나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직장에 다닌다면 일단은 이 ‘미 제너레이션’으로 보아야 한다.
이들은 “더치 페이는 기본이며 맥도(McDo)에 가도 1불밖에 없는 친구는 콜라 한잔만 마시고, 3불이 있는 친구는 빅맥 시켜 혼자만 먹는다. 이러한 이해 하에서 우리는 이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또 길을 잡아 주어야 한다.
40대에서 70대가 된 1세, 40대가 된 미국에서 자라난 1.5세, 그리고 미국에서 탄생한 20대 전후의 2세. 이 3대가 한자리에 앉아 밥상을 받다보면 생각이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1세나 젊은 세대나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다. 원칙과 현실의 간극(間隙)을 잘 살펴가며 변화에 순응하여야 한다.
구세대는 예전에 성취했던 것들을 지금도 할 수 있으리라는 지나친 기대를 접고 변화에 순응해야 하며, 젊은 세대는 1세들이 가꾸어 놓은 토양을 더 잘 가꾸도록 발벗고 나서야 하며 1세들의 경험담에도 귀를 기우려야 한다. 이것이 온고지신(溫故知新·learning the new, but reviewing the old.)의 참 뜻이다.
현재는 순간 순간 지나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라면 우리는 결국 과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꼭지를 통해 자란 과실의 꼭지를 똑똑 따 버리듯이」과거를 늘 도려내 버리고 오직 ‘나’ 만을 내세우면 남 없는 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비록 노인의 입담이 쓸지라도 그것은 지나가 버린 것이 현재와 만나는 현장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쓴맛도 잘 삭이면 약이 될 수 있다. 비록 기억 저편에 던져진 흑백사진이지만 흑백은 흑백대로 바랜 것은 바랜 것 데로 거기에 또 다른 정취가 있는 법이다.
“젊어도 고물(古物)이 있고, 나이가 들었어도 보물(寶物)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서울에서 유세할 때 장·노년층을 의식하고 한 말이다. 물리적 달력의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 젊음과 건강이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나이가 들었거나 젊었거나 고물이 되지 말고 쓸모 있는 보물 단지가 되기 위해 가끔은 밤하늘의 별과 허공도 바라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도 해야 하겠다.
/khchang@aol.co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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