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 식물원 한국 전통정원 축제
한국풍물과 만나는 화려한 ‘꽃숲 나들이’
이민 100주년을 맞는 우리들의 가슴에는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이 넘친다. 지난 4월 할리웃 보울에서 느꼈던 그 파도와 같은 감동의 물결은 이것을 확인 시켜 주었다. 이민 10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이번 주말 또 한 차례 펼쳐진다. 17일(토) LA 카운티 식물원(LA County Arboretum and Botanic Garden)의 아이어 홀(Ayres Hall)에서 마련되는 코리안 가든 페스티벌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주말, 다가올 축제의 공개 방송 진행을 맡은 정재윤씨(38·라디오 서울 파워 타임 진행자)는 아내 낸시 정(34·학원 원장)씨와 줄리, 저스틴 두 자녀를 데리고 LA 카운티 식물원으로 답사를 떠났다.
매일 방송을 앞두고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방송 원고를 쓰곤 하지만 이민 100주년 기념 축제 공개 방송처럼 대형 행사를 앞둘 때면 오프닝 멘트 하나에도 기분 좋은 부담감이 다가온다.
어디 직접 발로 찾아와 본 곳에 대한 느낌이 자료 찾아 준비한 인사말과 같을 수 있을까. 15년이 넘도록 LA에 살면서 아직 한 번도 찾은 일이 없던 식물원이었지만 이런 행사를 기회로 찾아보게 된 것이 퍽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식물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꽃과 나무들만 있는 정적인 공간. 하지만 이런 고정관념은 입구에서부터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한 마리 공작이 방문객들을 반긴다.
공작을 발견한 저스틴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자 낸시씨는 이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깃털이 아름다운 것은 분명 수컷이건만 그 화려한 꼬리털을 활짝 펴며 뽐내는 모습에서는 여왕과 같은 품위가 넘친다.
식물원 내부에는 20여 마리의 공작들이 이곳저곳을 활보하고 다녀 인도 께랄라 지방의 국립 공원에라도 온 느낌. 나무 위에 올라 우아하게 앉아 있는 공작, 패션쇼라도 펼치듯 꼬리털을 쫙 펴고 방문객들을 맞는 새, 수컷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암컷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어디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운 것은 그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공작새라는 사실이다. 그토록 화려한 모습에 어떻게 그런 어울리지 않는 울음소리를 낼 수 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식물원 내에는 공작은 물론 부엉이, 매를 비롯한 조류와 동물 231종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계절의 여왕 5월, 절정을 맞은 꽃나무에는 노랑, 분홍 꽃들이 가득하다. 초록 이파리들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참인 옐로우 트럼펫 트리(Yellow Trumpet Tree) 등 꽃나무들은 삶의 찬란한 환희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LA 카운티 식물원은 캘리포니아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127에이커에 가득한 꽃과 역사적 건물을 언제 다 돌아보나 걱정이 앞선다. 대충 겉만 핥기보다는 한 곳이라도 온 몸으로 느끼는 편을 선택한 정재윤씨 가족은 입구 바로 오른쪽의 선셋 매거진(Sunset Magazine) 전시 정원부터 천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잔잔한 연못, 살랑대는 잉어, 둥둥 떠다니는 연꽃 등 추억의 정원(Nostalgia Garden)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 들어서니 마음은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런 정원을 어디선가 봤던 것도 같다.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핀과 에스텔라가 처음 조우했던 플로리다 해변 마을 고성의 정원이 이런 구조였던가. 아니면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정원이 이렇게 생겼었나. 작은 분수에서 샘솟는 물은 경쾌한 노랫소리를 만들고 소년 소녀들의 대리석상은 숲 속 요정들처럼 정원을 환하게 만든다.
가든 갤러리에서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정원 스타일이 전시돼 있는데 한국 전통 정원도 400스퀘어 피트 규모로 마련돼 있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장승처럼 떡 버티고 있는 것을 보는 저스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조약돌이 가지런히 깔린 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못에는 비단 잉어가 황금빛 비늘을 반짝이며 뛰어놓고 그 위로는 물레방아가 흰 물줄기를 흘러내리며 나훈아의 노래 가사처럼 오늘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한국 전통 정원 프로젝트에 참가한 송재순씨(J.S 너서리 대표)는 꽃과 대나무, 바위, 연못, 물레방아, 수양버들, 작은 동산, 돌다리 등을 조화시켜 윤선도가 머물렀던 보길도의 세연정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재현해낼 계획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 전통 정원 조성 캠페인을 계속 펼쳐온 그녀는 더 많은 한인들이 자녀와 함께 식물원을 찾아 한국에서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정원을 감상하기를 소망한다.
하늘색 판자를 세워 놓은 정원 세팅을 마주 대하며 어린 시절, 그림처럼 아름다운 배경을 리어커에 싣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를 떠올렸다. 신부님의 동상을 위로 한 미션 가든은 샌 후안 캐피스트라노 미션의 축소판. 빨강, 초록, 노랑 원색의 옷감을 덧입힌 의자를 한 가운데 놓은 멕시코 식 정원에는 ‘여름날의 오수(A Summer Siest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새들이 지지배배 지저귀고 취할 듯 달콤한 꽃 내음이 가득한 정원. 예쁘게 단장된 정원 한 구석의 나무 벤치에 누워 휴식처럼 밀려오는 평화를 호흡하며 여유 있게 워즈워드의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
■ 한국정원 축제 Tip
LA 카운티 식물원에서는 17일(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제1회 한국 정원 축제가 열린다. 한국 전통 마을로 탈바꿈한 아이어 홀의 잔디밭에서 음악과 아트, 댄스를 즐기는 축제가 한마당 벌어질 계획이다.
행사에는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비롯해 한국 전통 음악과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된다. 한국 작가들이 그린 동양화와 서양화 작품 전시도 있게 되며 태권도 시범도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어린이 사생대회도 같이 열린다. 한국 축제도 즐기고 식물원도 돌아 볼수 있는 좋은 나들이 기회가 될 듯. 송재순 씨 등 한국 조경 디자이너가 설계한 한국 정원 전시는 행사의 하이라이트. 장터가 들어서 빈대떡, 파전 등 먹거리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식물원의 오픈 시간 매일 오전 9시-오후 4시30분. 입장료는 성인은 5달러, 학생이나 연장자는 3달러, 5살~12살까지의 어린이는 1달러다. 주차는 무료. 주소는 301 N. Baldwin Ave. Acadia CA, 91007. 가는 길은 2번 프리웨이 N. → 210번 프리웨이 E. → Baldwin에서 내려 우회전하면 오른쪽으로 정문이 나온다.
문의 (626) 821-3222
웹사이트www. arboret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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