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은 어디 있나.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던진 질문일 게다. 미군과 이라크군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건 다 안다. 그렇지만 명색이 수십만을 헤아린 이라크군인데 어떻게 전투다운 전투 하나도 없이 전쟁이 끝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미 지상군은 조기에 투입됐다. 그러므로 더 궁금한 대목이다. 그런데 3주를 끈 전쟁에서 이라크군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12년 전, 그러니까 1차 걸프전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을 때 이런 전망이 나왔다. 수십개 사단을 전선에 배치하고 싸우는 대회전(大會戰)은 걸프전이 마지막으로, 역사의 유물이 될 것이다. 더구나 미군을 상대로 그런 전쟁은 불가능하다.
하이텍이 동원된 무기체계를 갖춘 미군에 맞서 기존의 군사전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미군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최강의 상승군’으로 부른다. 고대 로마군단, 1940년대 나치 독일군도 오늘날의 미군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른 상대적 조건에서나, 절대적 조건에서나 오늘의 미군은 사상 최강이라는 이야기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 하는 말일까. 핵 군사력은 일단 제쳐놓자. 상대가 없으니까. 재래 군사력만 보아도 ‘팍스 아메리카’시대 미군의 위용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항공모함 선단은 전형적 공격형 무기다. 이 항모선단을 보유한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다섯 나라도 안 된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다. 중국은 항모 건조를 끝내 포기했다.
미국은 현재 9개 항모선단, 그것도 수퍼 항모선단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또 다른 니미츠급 항모를 건조 중에 있으므로 미국의 수퍼 항모선단은 곧 10개가 된다. 미국의 항모를 수퍼 항모라고 부르는 건 톤수에 있어 그나마 단 한 대인 러시아 항모의 두배가 넘어서다. 게다가 순양함, 핵잠수함 등으로 형성된 함대가 9개에 이른다.
1999년 코소보 사태 때 세르비아는 전투기를 띄우지 않았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기는 한 대도 출격하지 않았다. 활주로를 벗어나기도 전에 미군 미사일에 거덜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제해권만 아니라 제공권도 미국이 완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항공기 중 유일하게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기는 미국만 보유하고 있다. B-1, B-2폭격기와 F-117전폭기다. 이와 별도로 두종의 스텔스기가 개발중에 있다. 이 스텔스기들의 임무는 적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선제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제공격의 첨병이다.
미공군의 병기창은 하이텍 병기창이다. GPS(위성항법장치) 방식의 벙커 버스터에서 각종 정밀 유도폭탄, ‘MOAB’으로 불리는 사상 최대의 신형폭탄, 고공 무인정찰기, 또 조기경보시스템 등 그 이름을 열거하기가 바쁘다.
미지상군도 그렇다. 수로는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톱이지만 전투력에서는 ‘넘버 1’이다. 미육군의 M1 에이브람스 탱크는 한마디로 무적이다. 적 탱크를 만났을 때 두 방도 필요 없다. 대개 한 방으로 적 탱크는 부서진다. 가공할 파괴력에 정확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미군과 제3세계 국가의 군이 맞붙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 19세기 유럽 열강의 군대와 아프리카 전사들과의 전투를 생각하면 된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라크군은 도대체 어디 있었는가’- 그 답의 윤곽은 어느 정도 밝혀진 셈이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건 무기경쟁 시대는 마침내 미국의 독주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묘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소형 핵탄두 개발에 나선다는 뉴스다. 냉전시대 전쟁 억지력을 발휘한 초대형 핵탄두는 실제 전투에서 효용성이 없어 소형 핵탄두 개발에 나선다는 말이다.
그 타겟은 ‘깡패국가’(Rogue State)다. 생화학 무기나, 핵무기 생산시설을 지하에 숨겨놓은 ‘깡패국가’의 지하벙커를 깨기 위한 특수목적으로 소형 핵탄두를 개발해 실전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다.
무서운 이야기다. ‘핵무기는 전쟁에서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난 58년간의 금기를 깰 수도 있다는 시사 때문이다. 핵확산 저지의 의지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뜻이다.
특히 신경이 쓰이는 점은 이런 이야기들이 표면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상과 잇단 회담을 가지는 타이밍에 연일 보도돼 하는 말이다.
한 주를 간격으로 잇달아 열리는 한-미, 미-일 정상회담은 그러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지는 이렇게 정리했다. "백악관의 테러전쟁이 중동지역에서 극동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신문 보기가 겁나는 요즘이다.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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