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이 무엇일까.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따르면 ‘유머’라고 한다. 각료들이 회의 때 의견이 달라 논쟁을 열띠게 벌이고 나면 나중에는 좌중의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지는데 이때 유머처럼 좋은 치료약이 없다는 것이다.
포드가 대통령의 인격 구비조건으로 유머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백악관 경험에 의하면 대통령직은 너무나 고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유머리스트가 되는 길은 코미디언 소질을 갖거나 아니면 자신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을 참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포드는 상대방의 분위기를 살려주기 위해 자기가 희생되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포드는 백악관 재임시 코미디언들에게 최고 인기였다. 그를 소재로 한 코미디가 끊일 사이가 없었다. 그는 골프광이었는데 슬라이스가 심해 관중이 맞은 적도 있었다. 그 후 포드 대통령이 골프 칠 때마다 TV의 코미디언들은 "오늘은 포드 대통령의 골프 성적이 뛰어납니다. 병원에 실려간 관중이 없습니다"라고 조크했다. 또 그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리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코미디언들은 포드의 해외여행이나 지방시찰 때마다 넘어지는 시늉을 해 폭소를 자아냈다.
대통령을 풍자하는 유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어느 나라가 어느 정도 성숙된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나라의 코미디언들이 대통령이나 수상에 대해 어느 정도 내용의 유머를 할 수 있는가를 보면 안다. 북한에서 김정일을 코미디 소재로 삼을 수 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조크 잘못했다가는 생명이 왔다갔다한다. 한때 한국에서는 코미디언 이주일이 대통령인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대나 TV 출연을 제한 당한 적이 있었다.
유머는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언론자유와 직결된다. 코미디언 수준과 언론자유와는 정비례하고 그래서 민주주의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유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1~2초가 웃음을 좌우한다. 코미디언들이 청중들 가운데서 야유가 터져 나오는 것을 질색하는 것도 펀치라인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쾌해지면 상대방을 웃길 여유가 없어진다. 울다가 갑자기 웃기 힘들고 화내다가 우스운 소리하기 힘든 법이다. 리듬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뛰어난 유머리스트로는 링컨이 꼽히고 다음으로는 케네디와 레이건이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 화내겠다고 했어요"라는 케네디의 조크는 유명하다. 케네디의 아버지는 아들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 그만큼 자신이 돈을 많이 써야 한다는 걱정을 빗댄 것이다. 또 레이건이 힝클리의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을 때 입원실에서 수술 의사들에게 "당신들은 공화당이요? 민주당이요?"라고 물은 것도 기억에 남는 유머다.
미국인들은 어느 국민보다 유머를 좋아한다. 특히 대통령은 그렇다. 100세를 맞은 밥 호프가 11명의 대통령과 정당에 관계없이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코미디언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대통령과 기념 촬영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데 대통령이 기념 촬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밥 호프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밥 호프 100세 기념전시회’도 5월 레이건 기념도서관을 시작으로 하여 전국의 대통령 도서관에서 순회 전시될 계획이다. 보통 영광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공부를 많이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가 미국식 유머를 연구했다면 부시와의 회담이 잘 풀려갔을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한 얼굴로 북핵 문제를 의논했다면 좀 힘들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유머감각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방미 외교에서 그의 유머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했는지 곧 드러날 것이다. 유머에 약한 사람들이 미국인들이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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