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이루어진 웰페어 개혁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시행된 사회개혁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어려운 가정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된 웰페어 제도는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결혼을 해서도 안되고 일을 해서도 안 된다’는 ‘비뚤어진 인센티브’ 때문에 가정 파탄과 빈곤의 악순환을 조장, 미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원인의 하나로 지적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 제정 당시 리버럴 진영의 반대는 그야말로 결사적이었다. "이 법이 통과되면 100만명의 아동이 가난의 수렁에 빠질 것"에서부터 "병들고 가난한 약자를 때려잡으려는 파시스트적 발상"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된 후 웰페어 수혜자 수는 절반으로 줄고 일하는 미혼모 수는 50%나 늘어났다. 근로 미혼모의 증가는 단순히 웰페어 예산을 절약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정부가 주는 돈으로 그날그날 먹고산다’는 빈곤의 사이클을 깼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이런 역사적인 웰페어 법안에 서명한 것은 리버럴의 강력한 지지를 받던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이를 두고 "클린턴이기에 개혁이 가능했다. 공화당 대통령이 웰페어에 손을 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클린턴 취임 직후 나프타(북미주 자유무역협정) 때도 그랬다. 전임자인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다 "미국 일자리를 모두 멕시코에 빼앗긴다"며 날뛰던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위기에 놓인 이 협정을 소생시킨 것 역시 노조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클린턴이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도 이와 비슷한 예다. 골수 공산주의자로 정평이 있는 닉슨이기에 중국에 가 모택동을 만나는 것이 가능했지 민주당 대통령이었다면 "공산당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판이 두려워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이번 주 예정된 노무현-부시 회담이 과연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북 핵 문제와 반미감정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열리는 데다 부시 취임 초 워싱턴으로 달려왔다 망신만 당하고 간 김대중-부시 회담의 악몽이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앞 둔 워싱턴 분위기는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다. 지난 주 부시 대통령과 만나 신임장을 제출한 한승주 대사는 "회담을 앞둔 부시의 표정이 매우 밝았으며 지난 번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 중 ‘이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친근감의 표현이었지 결코 모욕적인 표현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며 "북 핵 문제를 둘러싼 두 사람의 생각이 밖에서 보는 것처럼 크지 않기 때문에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에서 걱정하는 것은 북 핵보다 오히려 경제 분야다. 북 핵을 둘러싼 불안감과 ‘진보적’ 노무현 대통령을 보는 월가의 불신, 통상을 둘러싼 한미간의 이견 등이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바쁜 일정 중에도 뉴욕 증권 거래소를 방문, 월가의 거물들과 만나고 실리콘밸리에 들르는 것도 모두 자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노무현을 당선시키는데 가장 큰공을 세운 소위 ‘운동권’은 지난 40여년 간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다. 이들은 ‘데모와 파업은 선이고 기업과 자본가는 악’이라는 단순논리가 뇌에 각인돼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 곁에 붙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으로 발길을 돌릴 까닭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캠페인 때와는 달리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고 공동 보조를 맞추려 애쓰고 있다. 지난 번 이라크 파병 때도 지지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국익을 위해" 파병 결정을 내렸다. 노 대통령이었기에 파병 반대 목소리가 그 정도였지만 만약 이회창 대통령이 그랬다면 "부시의 강아지"라느니 "한국 젊은이의 피로 석유를 사는 흡혈귀"라느니 별의별 소리가 다 나왔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조와 운동권을 바로 잡는데 노 대통령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경험은 비싼 수업료를 요구하는 학교다. 그럼에도 바보는 그 곳 이외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지금 한국은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노 대통령이 ‘진짜 바보’인지 ‘가짜 바보’인지를 가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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