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 지도자로서는 유일하게 미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거론 할 때 미국 언론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부문이다. 또 촛불시위 반미의 파도를 타고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미국의 논객들이- 아마도 주로 보수파겠지만- 노 대통령과 관련해 특히 분해하는 게 있다. ‘중재자’ 역할론이다.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발언이다.
도대체 한국의 안보를 지켜준 동맹인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는 이야기다. ‘중재자’라는 표현은 국민을 굶어 죽이면서,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마약판매에나 손대는 사악한 북한체제와 미국을 동격으로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라는 말이다.
그 뒤로는 또 이런 힐문이 들리는 듯하다. “한국은 과연 미국을 동맹으로 보고 있는가.”
좌파정권이다. 반미정권이다. 노무현 정권과 관련해 미국에서 들리는 소리들이다. 한 국내 논객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신념 과잉의 정권으로 비쳐지고 있다’- 중국식으로 표현하면 전(專)은 배제되고 홍(紅)만 설쳐대는 정권의 인상을 준다는 말이다. 문화혁명 때 모택동 정권같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노 정권의 파워 엘리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청와대 비서관 38명 중 14명이 운동권 출신 386세대다. 행정관에도 50명이 포진해 있다. 노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에 포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386세대 운동권의 특징은 저항성에 있다. 반(反)권위주의, 반(反)재벌, 그리고 반(反)미주의가 트레이드마크다. 온통 반(反)자 투성이로, 기존체제 부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민족주의 평화주의를 앞세우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그리고 좌파세력까지 뒤엉켜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오늘날 중심부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변부적 인식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약자 내지 희생자’의 논리에 빠져 있는 인상이다.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뱉는 언어는 그러므로 분열의 언어다. 통합보다는 ‘분열의 정치’ ‘배제의 정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항상 부정한다. 그러므로 그 언어는 대체로 ‘NO’가 되기 십상이다. 웬만해서는 언뜻 ‘YES’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에게 있어 무엇인가’- 이런 화두라도 던져지면 그 반응은 일단 무조건적으로 부정 쪽으로 기운다.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과 함께 반미주의가 386운동권의 한 속성을 이루고 있어서다.
부시 미 대통령은 얼마전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트’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싱크 탱크를 치켜세우면서 현 행정부에는 이 싱크 탱크 출신이 20명이나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신보수주의들이-네오컨(NEO-CON)- 부시 행정부 해외정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체니 부통령에서, 럼스펠드 국방,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에 이르기까지 행정부 해외 정책팀 주요 멤버는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이 큰 논객들 역시 ‘네오컨’이다. 미국의 조야가 이들로 뭉쳐져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들은 한 마디로 ‘팍스 데모크리티카’ 신봉자들이다. 자유민주주의 확산만이 세계 평화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그 정책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불사한다는 입장으로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독재체제는 모두가 적이다. 이 전략 목표는 그리고 이미 이라크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됐다.
‘네오컨’을 새삼 이야기하는 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의 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를 만나서다. 그런데 한편은 반미성향의 386운동권의 인질이 돼 있다. 다른 편은 일방주의의 보수세력에 포위돼 있다. 이런 두 정상의 만남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과 관련해 타임지가 붙인 제목이다.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이 전혀 다른 노 대통령이 부시를 과연 설득할 수 있을지 극히 회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
타임뿐 아니다. 다른 언론의 시각도 비슷하다. 그러면서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노 정권은 미국에게 ‘NO’라고 말할 것인가”하는 질문이다. 뒤집으면 그 뜻은 이렇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는 한미 동맹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으로 정상을 찾을지 아니면 더 악화될지 기로에 있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백악관에서 요즘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들은 과연 코드가 맞을까.” 정상회담을 주시해야겠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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