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생전에 식량부족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을까’-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란 신종 괴질이 중국을 휩쓸고 있다는 뉴스를 대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생산은 수령님의 지시대로 목표를 초과해 달성했다. 지방마다 비슷한 보고다. 보고서는 계속 상부로 올라온다. 당 중앙이 취합한다. 그리고 수령에게 보고한다. 보고서대로라면 식량은 남아돌게 돼 있다. 실상은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인민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또 거짓을 낳은 결과다.
모하메드 사이드 알 사하프란 사람이 기억나는가. 전 이라크 공보장관이다. 그는 바그다드에 미군이 진입한 상황에서도 이라크군이 미제국주의자들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하프는 아마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사들이 떼를 지어 탈영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각급 이라크군 부대 지휘부는 ‘미군 격퇴중, 이상 무’의 보고만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당연한 결과다. 제대로 보고했다가는 처형될 수도 있으니까.
사하프 정도면 ‘그래도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평이 요즘 중국에서 나돌고 있다고 한다. 왜. 그 답은 나중에 알아보자.
44년 전, 그러니까 1959년 당시 국방상 팽덕회는 ‘잘못된 정책’으로 수백만의 인민이 아사에 직면하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대약진운동이 그 잘못된 정책이었다. 모택동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실패한 정책이라니. 팽덕회는 결국 반당분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대약진운동은 최소 3,000여만의 희생자를 내고 중단됐다. 당국은 그런데도 함구했다. 그게 60년대 초의 상황이다. 1976년 당산 대지진 때 20여만이 숨졌다. 역시 비밀에 부쳐 졌다.
거대한 댐이 무너진다. 대형 광산사고가 발생한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소식은 차단된다. 정보는 비밀이다. 공표해서는 안 된다. 이 체제의 룰이다.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다. 어찌됐든 당 중앙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1989년 6월4일. 마침내 군이 동원됐다.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당 중앙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피플 파워’가 공권력 앞에 무너졌다. 천안문 사태다. 탱크 앞에서 맨손으로 맞선 용기도 소용이 없이 사람들은 죽어갔다. 당국은 잡아뗐다. 아무 일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13년 후다. 2002년 12월 중국 남부의 광동성. 한 남자가 심한 폐렴 증세로 숨졌다. 이 후 비슷한 환자가 속속 발생했다. 도대체 치료가 되지 않는다. 당국은 또 침묵이다. 괴질은 계속 확산,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섰다. 중국에서 발생한 괴질이 대륙들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데 경악한 것이다. 그게 지난 3월 중순께다.
WHO가 현장 점검을 나오자 당국은 사스 환자를 숨겼다. 중국 언론들은 서방의 음모론을 경계하는 논평을 일제히 실었다. 1959년 상황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 당국은 6개월만에 사스 만연사태를 시인한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그래도 상당히 빨리 진상을 어느 정도 밝힌 셈이다. 당국자들의 멘탈리티가 변한 결과인가. 그게 아닌 모양이다.
여기서 잠시 앞서 나온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이라크 전쟁의 삐에로, 사하프 전 공보장관이 왜 중국서는 뜨고 있을까.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중국 당국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양심적(?)으로 비쳐져서다.
국제 사회의 압력이 없었으면 당국은 결코 진상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뻔뻔함에, 또 거짓말에 분노는 더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불신이 가져온 패닉 상태에서 중국 사회는 마비되고 있다.
중국판 체르노빌 사건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위기다. 북경판 9.11 사태다. 사스 만연의 현 중국 상황과 관련된 미국 언론들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정보화 시대에 투명성이 결여된 중국체제, 다시 말해 시대착오적인 공산체제가 빚어낸 비극이고, 위기라는 말이다.
“왕조는 썩었다. 역질(疫疾)이 창궐한다. 민생이 거덜나면서 도처에서 유민이 발생한다. 상황 대처가 안 된다. 군림하기만 하던 관료체제. 그 체제의 무능이 처절히 드러나면서 민중의 분노는 확산된다.
천하대란(天下大亂)의 조짐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식 치란(治亂)의 패러다임이다.
천하의 일이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누가 하찮은 바이러스가 이처럼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예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미쳐서 하는 말이다. 그나저나 중국이 천하대란에 빠져들면 그 종속변수, 북한은 어떻게 될까. 그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옥 세 철<논설실장>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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