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시간 없는 미국인들
‘식사’는 예외, 스낵이 주류
요즘 미국인들은 하루종일 뭔가를 우물거리며 먹는다. 식사라 할 것도 없는 것을, 딱히 정해진 시간도 없이, 장소불문하고 씹는다.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서 ‘식사다운 식사’를 할 만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면서도 입을 오물거리고,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뭔가를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을 정해진 시간에 식탁에 온가족이 둘러 앉아서 먹던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인들의 식사 스타일이 변했다. 이런 스타일상의 변화는 미국 거대 식품제조회사뿐 아니라 식당과 샌드위치샵, 커피샵등 많은 한인들이 운영하는 스몰 비즈니스에도 중대한 도전과 기회로 다가서고 있다.
요즘 미국인들이 먹는 것을 보면 마치 방목하는 소가 들판을 거닐며 풀을 뜯어먹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도 짬이 나는 대로 뭔가를 씹으며 끼니를 때우는 것이 들판을 이리 다니고 저리 다니다가 풀이 보이면 뜯어먹는 소 스타일이다.
하루종일 뭔가를 우물거린다! 식품 비즈니스의 대가들은 미국인들의 이처럼 변화된 식사 스타일을 종일 우물거리기(grazing)란 한 단어로 압축해 표현한다. 전통적인 식사를 먹는 것(eating)과는 다른 것은 물론 스낵을 먹는 것(snaking)과도 다르다. 스낵이 식사와 식사 사이 군것질이라면 그레이징은 식사를 대체한다. “그레이징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고 있다”고 제러드 클라우어 매티슨의 분석가 매튜 디프리스코는 말한다.
딱히 정해진 시간 없이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끼니를 때우는 그레이징이 초래하는 결과는 식품 비즈니스에는 하나의 거대한 도전이자 기회이다. 미국 소비자들의 쉼 없는 식욕을 채워주기 위해 형성되는 시장은 자그마치 1조 달러 규모에 이른다. 큰 몫은 식품제조기업이나 스낵 전문회사들이 떼 가겠지만 식당, 샌드위치샵, 커피샵등 영세 비즈니스도 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식사의 기본적 정의가 변했다. 오늘날의 한끼 식사는 다이어트 콕 한잔과 스니커스 바 한개가 될 수 있다”고 ‘인포메이션 리소스’사의 부문 회장 킴 필은 말한다.
이 회사는 최근 소비자 2000명의 식습관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식사는 줄고 스낵은 는다’는 이름의 이 보고서가 밝혀낸 내용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미국 소비자들은 하루 4.3회 식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경우였다. 전통적인 하루 3회 식사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6회를 먹고 있었다.
미국인의 35%가 식탁에 앉아서 제대로 하는 식사를 하루 2번 또는 그 이하로 하고 있었으며, 절반은 식사와 식사 사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답한 미국인은 42%에 불과했다.
프리토 레이(Frito-Lay)사가 실시했던 조사에서는 이보다 더 사정이 나빴다. 소비자 17%가 다음주중 런치를 한번이상 걸러야 할 것이며 여기에 더하여 13%는 아침 마저 한번이상 먹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6%는 디너를 거를 것이라고 답했다.
2,5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수행된 이 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지난해 400억달러 어치의 식사를 걸렀다. 칼로리로 따지면 엄청날 테지만 그렇다고 이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그냥 날려보냈다는 말은 아니다. 식사는 건너뛰지만 굶지는 않는다. 반드시 뭔가를 먹어 배는 채워야한다.
“굶주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먹을 시간이 부족할 뿐’이라고 설명하는 ‘파네라 브레드’의 사장 란 사이치는 “그래서 요즘 미국인들은 일을 하는 중에도 운전할 때도 우물거리며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프리토 레이의 모기업인 펩시사는 2년전 퀘이커 오우츠사를 인수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었다. 프리토 레이에 합병된 후 첫 작품으로 나온 것이 ‘식사 대용으로 설계된’ 그라놀라 바 ‘퀘이커 바이츠(Quaker Bites)’였다.
그라놀라는 납작 귀리에 건포도나 누런 설탕을 섞은 식사대용 건강 식품으로 그레이징 스타일로 인해 급성장하고 있는 비즈니스다. ‘시나본(Cinnabon)’은 한 개에 730칼로리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1987년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 운동선수들이 먹었던 파워바(PowerBar)는 요즘 그레이저들의 가장 친한 친구다. 파워바 소비는 요즘은 운동선수쪽이 절반밖에 되지 않고 앞으로 7년뒤면 일반인 소비가 전체의 75%를 차지할 전망이다.
햄버거 패스트푸드 식당의 종가 맥도널드 마저 스낵 판매가 전국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며 식당과 커피샵 그리고 베이커리가 한 공간에 들어가 있는 ‘하나에 3개’ 레스토랑 모델을 실험할 계획이다. 맥도널드의 비즈니스 개발 그룹 담당 회장 매츠 래더하우젠은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구미를 맞춘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레이징’ 추세는 기존의 식당과 패스트푸드 체인에게는 중대한 도전이지만 스타벅스나 ‘파네라 브레드’처럼 이같은 추세를 재빠르게 읽고 적절하게 부응하는 업소에서는 새로운 수입원을 키우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그레이저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당밀(gooey)이나 브렉퍼스트 샌드위치, 패스트리류 빵을 선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며 ‘잭 인더 박스’가 아침 6시에 버거를 팔고 오후 6시에 브렉퍼스트 샌드위치를 파는 것도 이런 점에서 보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레이징 습관 때문에 주중뿐 아니라 주말 식사 스타일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요즘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토요일 식사는 이렇게 이뤄진다. 아침 9시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 한잔과 대니쉬. 정오 그로서리 샐러드 바에서 테이크 아웃 샐러드, 오후 3시 ‘타겟’백화점내 컨세션 스탠드에서 핫 프레젤과 소프트 드링크. 오후 7시 파네라 브레드에서 수프 한 사발과 샌드위치 반개, 밤 10시 웬디스에서 칠리 한 개와 프로스티 한잔.
쉼없이 뭔가를 먹지만 ‘진짜 식사’ 다운 식사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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