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테러리즘, 깡패국가(rogue state)들과의 전쟁이 4차 대전으로, 이 21세기의 전쟁은 그 속성에 있어 3차 세계 대전인 냉전을 닮았다. 엘리엇 코언의 말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전쟁을 또 이렇게 규정했다. 지난 세기 미국이 싸운 전쟁이 나치즘, 공산주의라는 세속 전체주의와의 투쟁이라면 21세기의 세계 전쟁은 종교적 전체주의와의 싸움이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 90년대는‘비치 파티’의 계절이었다. 그 파티를 끝나게 한 게 9.11 사태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테러와 깡패국가들이 우글대는 위험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는 것.
한 두 논객의 한가한 담론이 아니다. 신보수주의로 불리는 미국내 보수 강경세력에게는 정설로 굳어진 세계관이다. 이라크 전쟁은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앞으로 전개될 기나긴 전쟁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전선은 계속 확대될 수 있다. 그 제1 후보지는 아무래도 아랍권이다. 미국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호전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에 심하게 감염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평정됐다. 다음 타겟이 시리아일지, 이란일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북한도 가능한 공격 목표다. 이라크, 이란과 함께 어차피 ‘악의 축’으로 규정된 깡패국가가 아닌가. 그러므로….
이는 총론이다. 각론에 가서는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타겟에 따라, 또 전선마다의 특수사정에 따라 작전은 변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총론적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체제변화(regime change)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이미 실현된 정책 목표다. 문제는 각론이다.
무성한 곁가지를 치고 보면 그 각론이라는 것도 간단하다. 군사력을 동원할 것인가, 외교적 방법을 통해서인가다. 체제변화라는 정책 목표는 이미 정해졌으니 방법론만 남은 셈이다.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평정한 현재 일단은 외교 쪽에 기회를 주자는 게 미국이 선택한 방법론 같다. 그리고 열린 게 북경 3자회담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먼저 전면 폐기할 것을 원한다. 북한은 먼저 체제보장을 원한다. 중국은 국경 너머에서 전쟁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북경회담을 맞이한 3자의 각기 다른 입장이다. 이 회담은 그러면 어느 방향으로 결말이 날 것인가.
먼저 워싱턴포스트 사설을 보자. 미국의 입장이 간명히 나타나 있으니까. “독재자가 이번에는 확실한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살리고 또 보다 인도적인 체제를 구축하든지, 아니면 고립을 자초해 군사적 공격 위협에 직면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이다.”
도무지 될법한 이야기 같지 않다. 김정일로서는 이도 저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기 때문이다. 개방을 하면 김정일 체제는 무너진다. 페레스트로이카인가, 글라스노스트를 표방했다가 소련이 붕괴된 사실을 김정일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현 북한 상황은 80년대 후반 소련의 상황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김정일로서는 결국 퇴로가 없는 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
‘4차 세계전쟁은 그 속성상 냉전을 방불케 한다’-. 코언의 발언을 이쯤에서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미국이 내보일 카드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미국은 냉전이 아닌 열전을 치름으로써 한국의 민주화를 이룩했다. 동구에서는 그러나 다른 전략을 도입했다. 인권정책이다. 공산체제와 그 국민을 분리하는 정책을 편 결과 동구권이 와해됐다. 폴란드가, 동독이, 그리고 마침내는 소련제국이 무너진 것이다.
동구권 체제변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온 근본 원인은 헬싱키 선언이다. 닉슨이 소련 블럭 내 인권보장을 담보로 소련 체제유지를 보장한 게 헬싱키 선언으로, 이 인권 조항이 결국 소련제국을 안에서부터 함몰시킨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전체주의의 싸움에서 1차 무기는 말할 것도 없이 강력한 군사력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강력한 무기가 인권이다. 반세기에 걸친 냉전에서 입증된 진실이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인류적 범죄에 마침내 국제 사회가 입을 연 것이다. 때를 같이해 호주 당국은 마약밀매를 하던 북한 공작원들을 체포했다. 체제 영속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북한 체제의 단면을 폭로한 것이다.
동시에 김정일 제거론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미국에서 뿐 아니다. 북경의 외교가에서도 공개적으로 나도는 이야기다. 반드시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다. 외교적 압박을 통한 제거론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체제 붕괴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는 이야기인가. 2003년은 뭔가 상당히 중요한 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옥 세 철<논설실장>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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